파라과이 '親中좌파 정권교체' 없었다…71년 집권당 수성
'정권교체 예상' 여론조사 크게 엇나가…대만, 한숨 돌릴 듯
(아순시온=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금전 외교를 앞세운 중국의 영향력 확대 의지도, 중남미에 거세게 일렁이는 온건 좌파 물결('핑크 타이드')도 인구 750만명의 남미 내륙국, 파라과이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71년 집권' 저력을 등에 업은 여당 후보가 막판 야권 분열로 힘을 잃은 '2전 3기' 후보의 거센 도전을 뿌리친 가운데 정권교체 가능성을 예상케 했던 각종 여론조사는 2018년에 이어 다시 한번 신뢰도에 큰 흠집을 남겼다.
30일(현지시간) 치러진 파라과이 대선에서는 콜로라도당(공화국민연합당·ANR) 소속 우파 계열 산티아고 페냐(44) 후보가 42.74%의 득표율(개표율 99.89% 기준)로, 27.48%를 득표한 중도좌파 성향 에프라인 알레그레(60) 후보를 여유 있게 제쳤다.
주변국을 제외하고 그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파라과이 대선이 올해 국제사회의 눈길을 끈 건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이다.
대만의 13개 수교국 중 한 곳인 파라과이에서는 중국과 대만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라는 딜레마를 놓고 두 후보가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페냐는 대만과의 현재 관계를 강력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 및 대만이라는 전통적 우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외교 철학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 1월 CNN과의 인터뷰에선 미국·이스라엘·대만을 '파라과이 발전을 위한, 중요한 삼각 구도'로 설명하기도 했다.
반면, 알레그레는 파라과이 대표적 수출품인 대두와 소고기를 "세계 최대 시장에 개방해야 한다"는 논리로 중국 친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대만 언론에서 "우리와의 단교는 기정사실"이라며 우려를 드러낼 정도로 알레그레의 화법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최근 우군을 계속 잃으면서 전전긍긍하던 대만은 이날 파라과이 유권자의 선택에 한숨 돌리게 됐다.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온두라스, 니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에 좌파 정부가 속속 들어선 가운데 파라과이에서 우파 정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였다.
특히 지정학적 조건상 파라과이 사회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도 민심이 '좌향좌'를 선택하면서 파라과이 역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1992년 개헌 전까지 헌법에 '국교는 가톨릭'이라고 명시할 정도로 전통과 보수적 가치를 중시했던 파라과이에서 좌파 연합은 이번 대선 투표를 앞두고 막판에 사분오열됐고, 알레그레가 분열된 표심 속에 이변을 연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알레그레 개인적으론 2013년과 2018년에 이은 3번째 고배다.
ABC 콜로르와 라나시온 등 현지 매체는 대체로 우파를 '마피아'에 비유하며 척결 대상으로 삼았던 알레그레의 '증오 발언'이 어느 후보를 찍을까 갈팡질팡하던 중도층의 외면을 받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는 별개로 파라과이의 '못 믿을' 여론조사도 2018년에 이어 다시 한번 그 민낯을 드러냈다.
앞서 파라과이 몇몇 여론조사 기관은 그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알레그레가 지난 2월 말∼3월 초부터 페냐를 앞서기 시작한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오차범위 밖에서 페냐를 제친 것으로 나온 일부 결과는 당시 파라과이 야권의 분위기를 크게 환기한 '사건'으로 여겨졌다.
이후 조사기관마다 최고 20% 포인트 가까이 차이 날 정도로 격차와 순위가 들쭉날쭉했던 여론조사는 선거를 코 앞에 둔 26일(아틀라스인텔)과 29일(글로브일렉션·이상 기관명) 발표에서 양 후보가 1위를 주고받은 것으로 나오면서 치열한 각축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땐 여당 후보가 15% 포인트 이상 크게 앞서는 결과를 얻었고, 여론조사 기관들은 신뢰도에 큰 흠집을 입었다.
앞서 2018년에도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현 대통령이 야권의 알레그레를 20% 이상 앞지를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지만, 실제는 3% 포인트 차 신승을 거둔 바 있다.
김미라 파라과이 한인회장(변호사)은 "콜로라도당이 워낙 오랜 기간 집권하면서 전국적으로 촘촘한 조직을 형성했다"며 "당원 숫자도 많아서, 이 나라에서 정권 교체는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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