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SNS·TV 물들인 '친러' 콘텐츠…푸틴 지지 정서 확산
현지 방송채널, 러 관영매체와 협약 맺고 친러 콘텐츠 송출
중국 기업도 선전활동 도와…서방 매체는 입지 위축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프랑스 '해골 군단'이 아프리카에 몰려온다. 홀로 프랑스군에 맞서던 아프리카군은 얼마 안 가 든든한 우군을 얻는다. 바로 러시아 민간 용병대 와그너그룹이다. 아프리카와 러시아는 힘을 합쳐 프랑스를 무찌른다.
지난 1년간 소셜미디어(SNS)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와그너그룹의 홍보 애니메이션에 담긴 장면들이다. 러시아군은 아프리카군과 전투를 벌이다 "돕게 돼 기쁘다"는 말을 남기며 한편의 '영웅물'을 마무리 짓는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친러 콘텐츠가 아프리카의 SNS와 뉴스 홈페이지, TV 등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전 대륙을 걸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웅'으로 숭배하는 정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단순히 러시아 제작 콘텐츠를 트위터와 텔레그램에 실어 나르는 인플루언서가 약 14만9천명의 팔로워를 거느릴 정도다.
카메룬 TV 채널 '아프리카 미디어'(Afrique Media)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칭송하는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들 콘텐츠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한편, 러시아의 세력 확장이 곧 아프리카의 국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유럽과 미국의 개입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아프리카 현지 방송을 사실상 장악해 이러한 관점을 심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국방부 산하 군사전략연구소(IRSEM) 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 통신과 RT는 아프리카 언론 매체 최소 12곳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스푸트니크는 프랑스어 방송을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 단장하는 작업을 추진해왔으며, 말리의 수도 바마코 기반 라디오는 스푸트니크 뉴스 팟캐스트를 송출하고 있다.
실제 최근 유출된 미국의 기밀 문건에는 러시아군 정보당국이 아프리카 여론을 개조하기 위해 현지 매체를 이용한 선전 활동을 계획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방송 사업체 스타타임스는 RT가 방송을 송출할 수 있도록 협조했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러시아 콘텐츠를 번역해 보도하는 등 중국의 개입도 파악되고 있다.
말리의 팩트체크 사이트 '방베르(Benbere)' 관계자는 "이곳(아프리카)에서 러시아의 가짜뉴스는 산업 수준의 규모로 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구권 언론 매체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영국 BBC는 아프리카에서 기자 수십명을 감원했을 뿐 아니라 현지어 방송 채널을 3개 이상 폐지했다. 프랑스 공영라디오 RFI와 공영방송 프랑스24는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의 송출이 중단됐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서구권 매체가 설 자리를 잃으면서 친러 내러티브가 침투할 공간은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유리 피보바로우 세네갈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 제작 미디어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세네갈의 고위 각료들이 우크라이나가 왜 러시아를 공격했는지 묻는가 하면, 현지 기자들은 스푸트니크의 기사를 들이밀며 따지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NYT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 거주하는 80대 남성이 가족사진 사이에 푸틴 대통령의 사진을 놓아둔 사연을 소개하며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편향적으로 보여주는 서구 언론 매체와 달리 이들(Afrique Media 등)의 정보는 불편부당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acui7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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