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독상의 대표 "IRA·원자재법, 공정경쟁 방해해선 안돼"
마틴 행켈만 "한국-독일 모두 수출 중심 국가…협력 강화 필요"
"한-EU FTA 업그레이드 필요…양국 프렌드쇼어링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한국과 독일 모두 수출 중심의 국가이고, 이런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양국이 협업을 강화해야 합니다."
마틴 행켈만(52)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지난달 30일 한독수교 14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으로 자국 우선주의 흐름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함께 대응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독상의는 주한미국상의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외국 상공회의소로, 회원사 540여곳을 두고 있다.
독일 변호사 출신인 행켈만 대표는 주튀니지 독일상의 대표와 주필리핀 독일상의 대표 등을 지냈으며 2021년부터 한독상의 대표를 맡고 있다.
우선 그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따라 한독 경제 관계가 더 강화됐다"며 운을 뗐다.
특히 2011년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경제적 관계가 한층 더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한독 교역량은 2011년 264억달러에서 2022년 336억달러로 약 27% 증가했다.
◇ "공급망 실사법 대응해 ESG 역량 키워야…국가 간 일치된 기준 필요"
행켈만 대표는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현안으로 떠오른 EU의 공급망 실사법안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공급망 실사법은 개별 기업뿐 아니라 협력사의 ESG 경영 수준을 평가해 공시하는 제도로, 공급망 내에 환경이나 인권 문제가 불거질 경우 고객사와의 거래나 계약이 중단될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며 내년 EU 전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행켈만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급망에 대한 통제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이런 규제에 민첩하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다만 그는 "기업이 정부나 정치인들과 소통하며 실제로 공급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 알리고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현실적 상황이 규제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규제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국가 간에 정의된 기준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상호 간에 시장 장벽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한국과 독일은 높은 수준의 노동·품질 기준과 우수한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고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며 "양국 관계가 더 결속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탄소 규제 강화 흐름, 한국 기업에 기회 될 수도"
행켈만 대표는 보호무역이 확산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IRA, 그리고 유럽판 IRA로 불리는 EU의 핵심원자재법(CRMA)과 관련 "이런 법안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한국과 독일은 수출 중심 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측면을 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IRA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차별적 조항이 담겨 논란이 되고 있다.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서는 우방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또 한국과 독일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는 않지만 사고방식과 가치가 서로 매우 가깝다고 그는 덧붙였다.
행켈만 대표는 특히 "프렌드쇼어링을 위해서는 규제가 차별적으로 적용돼서는 안 되고,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모두가 보조금에 접근할 권리가 동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의 탄소 규제와 관련해서는 "장애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기회로도 생각될 수 있다"며 "탄소중립 경제에서 한국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국은 산업화된 나라이며, 국내총생산(GDP)에서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양국 공통의 과제인 재생 에너지, 수소 등에 대해 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 노동법 엄격…중대재해법, 처벌보다는 방지에 초점을"
한국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으로는 규제 완화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특히 "한국의 노동법이 상당히 엄격하다고 생각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보다는 사고 방지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행켈만 대표는 또 '한-EU FTA 2.0'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정이 체결된 지 12년이 지났고,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FTA를 새롭게 협상하진 않더라도,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규정을 발굴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상호인정과 기준 인증 관련한 규정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FTA 개정을 위해 양쪽을 모두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완전히 새로운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할지, 기존 협정을 수정할지는 전문가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독상의는 또 양국 교류 협력을 위해 올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우선 이달 12∼14일 열리는 국제그린엑스포에 참가해 회원사의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분야 최신기술과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5월 26일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기후산업 엑스포에서는 '제5회 한독 에너지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6월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독 비즈니스 투자 서밋을, 10월에는 제4회 한독 수소 콘퍼런스도 열 계획이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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