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너무 그리워"…장국영 20주기 추모하는 홍콩
홍콩문화박물관, 빨간 하이힐 등 무대의상·사진·상패 60여점 전시
지하철역·쇼핑몰에도 전시회…추모 콘서트·토크쇼도 이어져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이 장궈룽(장국영·1956∼2003)의 추모 물결로 넘실댄다.
올해 그의 20주기를 맞아 크고 작은 전시회가 곳곳에서 막을 올렸고 추모 음악회와 토크쇼, 영화 상영회 등이 마련된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눈을 감아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를 홍콩이 다시 소환해냈다.
◇ "홍콩의 아이콘"…홍콩 정부가 추모 전시회 주최
1997년 콘서트에서 신었던 빨간색 하이힐, 2000년 콘서트에서 입었던 양팔에 하얀 깃털이 달린 정장.
30일 오후 홍콩 샤틴의 홍콩문화박물관에서 만난 장궈룽의 유품이다. 이 구두와 정장이 대중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궈룽의 연인이었던 대피 통(당학덕)이 소장하고 있다가 공개했다.
홍콩이 낳은 세계적 스타 장궈룽의 숨결이 여전히 남아있는 무대 의상과 사진, 앨범, 상패, 영상과 음악을 한자리에 모은 '레슬리, 당신이 너무 그리워'(Miss You Much Leslie) 전시회가 이곳에서 전날 개막했다. 장궈룽의 영어 이름이 레슬리 청이다.
오는 10월 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홍콩 레저문화사무처가 주최했다. 홍콩 정부 차원에서 홍콩영화와 캔토팝(홍콩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장궈룽의 20주기를 기리는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홍콩 당국이 3년간의 '제로 코로나'를 끝내고 올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며 관광객 유치에 팔을 걷어붙인 상황에서 마침 장궈룽의 20주기를 맞아 홍콩 전역에서 '레슬리'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중 홍콩문화박물관 전시가 가장 길게 이어진다. 60여점의 전시품은 장궈룽을 발굴해 키운 매니저 플로렌스 찬(천수펀)과 다른 두 명의 측근이 엄선했다.
찬은 지난 28일 홍콩 언론에 "많은 해외 팬이 '꺼거' 레슬리를 추모하기 위해 홍콩에 오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며 "이 전시회는 다른 시대로부터의 많은 다른 기억을 일깨울 것이며 레슬리의 세상인 그때 그 시절로 사람들을 데려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궈룽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금지옥엽'(1994)의 주제가 '추'로 홍콩영화제에서 수상한 최우수 주제가상 상패를 비롯해 그가 받았던 많은 트로피가 전시됐다.
무엇보다 전시장 내부에서는 고인의 노래와 목소리가 쉬지 않고 흐른다.
평일이지만 이날 전시장은 매우 북적였다. 홍콩 특유의 크지 않은 규모 전시장에 대부분 40대 이상인 관람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 들어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성도 많았다.
중고등학교 동창이라는 3명의 여성은 한켠에서 상영되는 장궈룽의 콘서트 영상을 감회에 젖어 바라보며 담소를 나눴다.
그중 웡모 씨는 "학창 시절부터 레슬리를 너무나 좋아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매년 추모하고 있다"며 "올해 전시회가 많아 좋다. 그의 옛 모습을 다시 보니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며 웃었다.
◇ "영원한 우리의 '꺼거'"…세대 초월 인기
홍콩인들은 장궈룽을 '꺼거'(哥哥)라 부른다.
'천녀유혼'을 촬영할 당시 여주인공 왕쭈센(왕조현)이 그를 '꺼거'라고 친근하게 부르기 시작한 게 기원으로 알려졌다.
중국어로 '형', '오빠'라는 뜻의 일반적인 단어이지만 홍콩인들에게 '꺼거'는 특별히 장궈룽을 부르는 애칭이다. 장궈룽도 생전 인터뷰에서 '꺼거'라 불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하철 홍콩역에서도 '레슬리 청 회고 : 20주기 전시회'가 다음 달 6일까지 열린다.
홍콩 지하철 당국이 한 예술단체와 주최한 행사로 장궈룽의 지인들이 그를 회고하는 인터뷰 영상이 전시장 한쪽에서 상영되는 와중에 팬과 예술가들이 그린 장궈룽 그림과 조각상이 전시됐다.
또한 장궈룽의 생전 사진들과 그의 앨범 재킷, 그가 등장한 신문 기사와 광고 등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그중에는 장궈룽 사후 태어난 19세 대학생 팬이 모은 장궈룽의 영화 팸플릿, 콘서트 프로그램, CD 등도 포함됐다고 한다.
'천녀유혼', '영웅본색',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패왕별희', '성월동화', '금지옥엽', '연지구', '동사서독' 등 숱한 히트작을 남긴 장궈룽의 아름다웠던 20∼30대 모습이 시선을 잡아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 중간에 전시장이 마련된 덕분에 오가는 사람들이 쉽게 들러 고인을 추억할 수 있다.
카오룽의 대형 쇼핑몰 올림피안시티 중앙홀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레슬리와의 만남' 전시회가 마련됐다.
다음 달 2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는 430인치 대형 TV를 통해 장궈룽의 생전 콘서트, 시상식 수상 모습 등이 상영되고, 자동 연주되는 그랜드 피아노가 그의 히트곡들을 들려준다.
또 장궈룽의 대형 사진이 세워져 '포토존' 역할을 하는 가운데 사진과 앨범, 인터뷰 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31일에는 이곳에서 장궈룽의 지인들이 팬들과 함께 고인을 회고하는 토크쇼가 열린다.
전날 저녁 이곳에서는 다양한 연령의 관람객이 고인의 흔적을 감상하고 있었다. 한 아버지는 '레슬리, 사랑해'라고 적힌 팻말을 든 10대 아들의 모습을 장궈룽의 사진을 배경으로 찍어주며 흐뭇해했다. 홍콩에서 장궈룽의 인기는 세대를 초월함을 보여줬다.
◇ "캔토팝의 왕"…4월 1일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은 꽃밭으로
배우에 앞서 가수로 먼저 데뷔한 장궈룽은 1980∼1990년대 '캔토팝의 왕'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매년 그의 기일 즈음에는 동료, 후배 가수들이 고인의 히트곡들로 꾸미는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온라인 음악회가 명맥을 이었는데 올해는 서구룡문화지구 당국이 주최하는 '나는 나야 - 레슬리 청을 추모하며'가 이날부터 사흘간 열린다.
홍콩 정부 산하 공공 기관이 다음 달 진행하는 '홍콩 뮤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추모 음악회를 마련한 것이다.
팬들은 장궈룽의 기일인 4월 1일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센트럴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 집결할 전망이다.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그의 기일이면 해당 호텔 앞은 그를 추모하는 꽃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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