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의 '사법정비' 논란, '성문헌법 제정'으로 정리될까
대통령 주재 절충협상서 야당 제안…현재는 일련의 '기본법'이 헌법 역할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가 추진해온 사법부 무력화 입법이 시민들의 거센 저항 속에 일시 연기된 가운데, 야당 측이 성문헌법 제정을 제안해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9일(현지시간)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츠하크 헤르조그 대통령은 전날 밤 여당과 야당 대표단을 초청해 사법 정비 입법에 대한 절충 협상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중도 성향의 제1야당인 예시 아티드는 헤르조그 대통령에게 성문헌법 제정 추진을 제안했다.
예시 아티드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대통령에게 건국 75주년을 맞아 허울뿐인 수정안이 아닌 진정한 변화를 제안했다. 그것은 독립 선언에 담긴 가치를 반영한 헌법에 대한 초당적인 합의"라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기 위해 현재 크네세트(의회)에서 논의되는 사법 정비 법안은 의제에서 제외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성문헌법 제정은 우파 연정의 사법정비 입법 논란 속에 예시 아티드의 대표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가 제시해온 대안이다.
그는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연정을 '위험한 정부'로 규정하면서도, '오래된 사법 시스템이 균형을 잃었다'는 연정 측의 주장만은 옳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사법 행동주의(judicial activism, 법원이 판결을 할 때 법조문과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 영향, 법관 개인의 생각 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사법철학)에 제한을 두어야 하지만, 강력하고 독립된 법원 없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법정비 입법 반대운동을 주도해온 단체인 '양질의 정부를 위한 운동'도 연정의 입법안에 대한 절충 협상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독립선언 정신에 기초한 헌법 채택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5월 크네세트의 여름 회기까지 이어질 대통령 주도의 사법 정비 입법안 절충 협상에서 성문헌법 제정 문제가 본격 논의될지 주목된다.
이스라엘에는 명문화된 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스라엘은 헌법적 가치를 담은 여러 개의 기본법(Basic Laws)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1948년 1월에 채택된 이스라엘의 독립선언문은 같은 해 10월까지 제헌의회가 헌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주변 아랍권과 대치해온 이스라엘이 독립선언문에 명시된 짧은 헌법 제정 기한을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듬해 총선을 통해 소집된 제헌의회도 국가의 목적과 장기적 비전에 관한 의견 불일치 때문에 성문헌법을 제정하지 못했다.
다만, 제헌의회는 이후 구성될 의회의 헌법법률사법위원회에 제헌 책무를 넘기고, 이후 위원회가 제정한 기본법들을 성문헌법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 역시 당장 성문헌법을 제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헌법제정 책무는 넘겨받은 크네세트는 이후 순차적으로 ▲크네세트(1958년 제정, 1987년 보강) ▲이스라엘 영토(1960년) ▲대통령(1964년) ▲정부(1968년 제정, 2001년 개정) ▲국가 경제(1975년) ▲군대(1976년) ▲예루살렘 수도 지위(1980년) ▲사법부(1984년) ▲ 국가감사(1988년) ▲인간 존엄과 자유(1992년) ▲직업의 자유(1994년) ▲국민투표(2014년) ▲민족국가(2018년)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했다.
우파 연정이 사법 정비를 통해 대법원에서 박탈하려던 '사법 심사' 권한은 크네세트에 관한 기본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인간 존엄과 자유, 직업의 자유에 관한 기본법에 들어있는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제한 규정'을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의회의 모든 입법행위와 정부의 명령, 행정행위 등을 무력화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사법심사가 대법원의 권한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우파 및 정통파 유대교 기반 정당들은 유독 대법원의 사법심사에 불만을 드러내 왔다.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착촌 확장, 정통파 유대교도 커뮤니티의 자치권 확대 등을 위한 입법이 사법 심사를 통해 좌절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우파 및 정통파 유대교 기반 정당들은 지난해 12월 네타냐후의 손을 잡고 집권한 뒤 사법부가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 위에 군림한다는 논리로 대법원의 사법 심사권 박탈을 시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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