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수율 노출되면 영업전략·새 버전 유형까지 알려질 수 있어"
"정부간 협의에서 영업 데이터 제출 어렵다는 점 제안해야"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김아람 기자 =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CHIPS Act) 지원금 신청 기업에 업계 내부적으로 민감한 '영업 기밀'로 치는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까지 요구하면서 반도체 업계에서 "너무 과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조건을 받아들여 보조금을 신청하는 게 유리할지, 아예 보조금 신청을 포기하는 게 나을지 분주하게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이다.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공개한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 절차에서 예상 현금흐름 등 사업의 경제성을 추산하는 데 필요한 금융 모델을 제시했다.
예시 모델을 보면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 생산 첫 해 판매 가격, 이후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 가격 증감 등을 입력하도록 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소재, 소모품, 화학품 등도 입력 항목으로 제시했다.
특히 이 같은 자료를 단순히 숫자가 아닌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도록 했다.
당장 반도체 업계에서는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정보를 다 제출하라는 것"이라며 "이대로 자료를 내게 되면 기술 유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를 들어 반도체 현재 버전이 어느 정도 수율이 나오는지를 보게 되면 마진이나 향후 영업 전략, 향후 예상되는 새로운 버전의 반도체 타입을 예상해 볼 수 있다"며 "경쟁업체로 정보가 들어가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영업 비밀까지 알려달라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광만 제주대 전자공학과 명예교수는 "요구하는 내용이 상당히 불공정하고 지나치다"면서 "미국의 요구가 지나친데 이걸 무작정 거부할 수 없으니 업체들이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이날 공식적인 반응을 내지는 않았으나, 향후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조금 신청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2조5천억원)를 투입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공장 부지를 선정하지 않았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인플레이션 등으로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 건설 비용이 당초 제시한 170억달러에서 80억달러 늘어난 250억달러 이상이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환율이 오른 상황까지 고려하면 약 13조원가량 비용이 더 늘어나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조금은 8억5천만∼25억5천만달러(약 1조1천억∼3조4천억원) 규모다.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지원액은 59억5천만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을 안 받게 되면 시작부터 적자가 될 테니 안 받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받자니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며 "정부 등이 나서서 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까다로운 조건 탓에 삼성전자 등이 보조금 신청을 안하면 사실상 '흥행 참패'를 맛보게 되는 만큼 향후 협의를 통해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서지용 교수는 "업체들뿐 아니라 정부도 협상하는 과정에서 손익 자료 같은 사업계획서까지는 몰라도 수율 등 영업 관련 데이터는 제공하는 게 어렵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고, 협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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