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카펫도 없어' 프랑스 시위에 英 찰스3세 방문도 어수선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이번 주말 즉위 후 처음으로 해외 순방에 나서는 영국의 찰스3세 국왕 부부가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고 AP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지만 현재 프랑스는 정부의 연금개혁 강행으로 노동자들이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찰스3세 부부는 오는 26∼29일 영국 정부를 대신해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다.
영국 국왕 부부의 프랑스 방문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로 엉킨 양국 관계를 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는 전역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연금개혁을 하원 표결을 건너뛴 채 강행하자 전국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섰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마크롱이 의회를 무시하고 연금개혁 법안을 밀어붙인 데 더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국왕 부부의 방문은 여러모로 시기상 좋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전제군주를 몰아낸 혁명을 통해 공화정을 세운 나라에서 가뜩이나 노동자들이 인생에서 일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 단단히 뿔이 난 상황에서 영국의 군주가 방문한다는 점에서 국빈 행사는 세습 특권층들의 낭비성 행사로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정부의 공식 의전 행사를 주관하는 '모빌리에 나쇼날' 소속 노조원들이 찰스3세 국왕 부부의 파리 도착 환영식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찰스3세를 환영하는 레드 카펫도 깔리지 않고 연회장을 수놓을 깃발 장식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프랑스 엘리제궁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대체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찰스3세 국왕의 프랑스 방문 기간 안전하게 일정이 진행될 예정이며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리 시내 거리는 청소 노동자들이 쓰레기 수거를 거부한 탓에 온통 쓰레기 더미로 변해 외빈을 맞을 상황이 되지 않는다.
찰스3세 국왕 부부는 이번 프랑스 방문 때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개선문, 베르사유궁 등지를 들를 예정이다.
산드린 루소 녹색당 의원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믿기지 않는다. 국민들은 길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공화당 군주'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베르사유궁에서 찰스3세 국왕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한탄하고 "국왕의 이번 방문은 취소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AP통신은 프랑스 국민들은 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를 단두대의 이슬로 보낸 이후 '왕들'과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여왕들'과는 나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찰스3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2세는 프랑스에서도 꽤 인기가 좋았는데, 그녀도 생전 불어에 능통했고 유럽 국가 중 프랑스를 가장 많이 방문하며 프랑스에 호감을 보였다고 한다.
현재 프랑스 언론들은 찰스3세 국왕 부부가 선대 여왕보다 훨씬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올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bana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