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서방제재 우회통로 거부"…수출입품 실시간 추적 나서
서방, 중앙아 국가 등 러시아 뒷문 역할 의심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옛 소련권 국가인 카자흐스탄이 반도체 등 서방 제재 품목이 자국을 통해 러시아로 들어갈 수 없도록 모든 수출입품 이동 경로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추적하는 시스템을 다음 달 1일부터 운영한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24일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와 중앙아시아 지역 전문매체 유라시아넷 등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는 이번 방침과 관련해 "정부는 러시아와의 무역에 어떠한 제재도 적용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이런 방침이 카자흐스탄이 서방 제재를 우회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2차 제재와 관련한 위험을 이해하고 있고 모든 파트너와의 상호 교역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리시아넷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수출입품 추적 강화 방침은 전통적인 주요 교역국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유럽연합(EU)·미국 등과 신뢰 관계도 발전시켜야 하는 카자흐스탄의 복잡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중립을 유지하는 카자흐스탄은 현재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한 줄타기 외교 노선을 이어오고 있다.
무흐타르 틀례우베르디 카자흐스탄 외무장관은 지난달 자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에게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와 역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각국의 경제는 오랫동안 서로 연결돼있다"며 "이런 까닭에 지금 상황이 우리도 힘들다. 카자흐스탄은 제재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러시아 제재 도입 후에도 옛 소련권인 중앙아시아 국가 등이 러시아의 뒷문 역할을 하며 제재 우회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서방의 의심은 지속한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제네바 소재 트레이드데이터모니터(TDM)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를 비롯한 제재 대상 품목이 제3국을 경유해 러시아에 우회 수출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인 2021년에는 대러 반도체 수출액이 연간 1만2천 달러(1천500만원)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370만 달러(48억원)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은 러시아에 마이크로칩을 공급한 우즈베키스탄 기업에 2차 제재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비타 야보르치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중계무역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며 "서방에서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으로 수출이 증가했고, 동시에 이들 국가의 대러시아 수출도 늘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러시아로의 재수출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제재에 관한 정보를 기업들에 알리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구축했으며, 내달부터 운영하는 수출입품 모니터링 시스템도 이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고 밝혔다.
이어 "의심스러운 무역 거래가 있으면 철저히 분석하고 필요하면 행정적 조치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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