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집 바꾸어 살아보는 여행, 해보실래요"
국내 첫 '홈 익스체인지' 중개 앱 출시 서미영 비홈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할리우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원제 The Holiday)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영국 런던 교외에 사는 두 여주인공이 서로 집을 바꾸어 다른 환경에서 2주 동안 지내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얘기를 담았다.
2006년 개봉된 이 영화 때문에 일정 기간 거주 공간을 교환해 쓰는 '홈 익스체인지'(Home Exchange) 여행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실연의 상처를 달래려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던 두 유명 배우(캐머런 디아즈 & 케이트 윈즐릿)가 홈 익스체인지 사이트를 통해 집을 바꾸는 거래 장면을 선보인 영향이었다.
◇ 영화로 주목받은 '홈 익스체인지' 여행
홈 익스체인지는 여행에서 중요한 숙박 문제를 당사자 간의 물물교환 형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홈 익스체인지 중개 서비스는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퍼지다가 이 영화 덕분에 급성장기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홈 익스체인지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고, 이를 중개하는 전용 플랫폼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홈 익스체인지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나선 비홈(B.Home)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전체 팀원이 3명인 비홈은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에서 메타버스 기획자로 일하는 서미영(27) 대표가 2021년 7월 세웠다.
금융서비스 업체 뱅크샐러드에서 개발 업무를 하는 김동혁(25) 씨가 CTO(최고기술책임자)를, 프리랜서 UX(사용자경험) 컨설턴트인 김도환(27) 씨가 CPO(최고제품책임자)를 맡고 있다.
재정 상황이 어려운 스타트업 창업기 멤버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이들도 '투잡'을 뛰고 있다.
서 대표를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있는 크로스 캠퍼스 청파에서 만나 창업 경위를 들어봤다.
크로스 캠퍼스 청파는 숙명여대가 유망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업무 공간으로 마련한 시설이다.
비홈은 작년 12월 홈 익스체인지 중개 전용 앱(애플리케이션)을 MVP 버전으로 선보였다.
MVP(Minimum Viable Product)는 창업자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핵심 기능만 탑재한 프로그램이나 제품을 뜻하는 말이다.
서 대표는 서비스 기획에서 출시까지 2년가량 걸린 이 앱이 홈 익스체인지 중개 앱으로는 국내에서 첫 사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충분한 기능을 갖추려면 앞으로 갈 길이 먼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내에선 생경한 홈 익스체인지 문화를 확산시키고 원활한 교환이 이뤄질 수 있는 수량의 물건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마련해 투자를 유치하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여야 한다.
서 대표는 출시 두 달여 만에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를 통한 다운로드가 2천 건을 넘어서고 등록 회원이 300명에 육박하는 등 주목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현재 비홈에 등록된 집은 36건 정도이고, 첫 교환 거래를 앞두고 있다.
첫 사례는 한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어 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교민 한 명과 제주도 거주자 간의 거래로, 막바지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비홈 창업은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여행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서 대표의 단순하고도 소박한 꿈으로 시작됐다.
경남외고 영중국어학과를 거쳐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를 나온 서 대표는 해외의 다양한 여행 행태를 공부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는 홈 익스체인지 문화를 알게 됐다.
"만일 자취생이 제주 한 달 살기 여행을 한다고 하면 한 달 숙박비 100만원에 비어있는 자취방 월세 60만원까지, 숙박비로만 160만원이 들어갑니다.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면 여행지에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쇼핑도 하고 진짜 재미를 얻는 일에 돈을 쓸 수 있는데 말이죠."
스무살 때 상경해 8년간 월세로만 4천만원 넘게 썼다는 서 대표는 숙박비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는 홈 익스체인지를 활용하면 주거비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더 빡빡해진 젊은이들이 장기 여행을 쉽게 떠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 거주 공간 가진 누구나 '홈 익스체인지' 가능
회사 이름이자 앱 서비스명이기도 한 비홈(B.Home)은 소유하거나 거주하는 집인 에이(A)홈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나의 두 번째(B) 집이 된다(Be)'는 의미를 닫고 있다.
비홈은 소유권에 관계 없이 전월세 임대차 계약으로 거주 공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등록해 교환할 수 있는 중개 장터 역할을 한다.
서 대표는 집을 소유한 사람뿐만 아니라 세입자들도 홈 익스체인지가 가능하다며 당사자 간의 금전 거래 없이 빈 집을 친구가 이용토록 하는 개념이어서 전대차와 관련한 법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롭다고 말했다.
현재 서비스 초기 단계인 비홈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교환 거래가 성사될 경우 나중에 돌려받는 보증금만 예치하면 된다.
비홈이 잡았던 1차 목표 고객은 숙박비 부담 때문에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자취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였지만 앱 출시 후에 변화가 생겼다.
"제가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친구들이 두 부류로 나뉘게 됐어요. 고향인 경남 김해 친구들은 방학 때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하고, 서울 친구들은 지방 소도시에 살아보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모두 타지살이에 대한 호기심과 로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죠. 그래서 애초 1차 타깃 고객을 MZ 세대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서 대표는 서비스를 실제로 운영해 보니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몇개월 지내고 싶어 하는 은퇴 세대의 관심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며 이들을 유치하는 데 역량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당장의 수익 모델 집착 안 해…홈 익스체인지 대표 브랜드 성장 목표"
비홈이 서구권에선 널리 보급된 홈 익스체인지를 한국에 정착시킨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아 순항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속할 수 있는 당장의 수익 모델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서 대표는 앞으로 1년 정도는 하나의 여행 방법으로 홈 익스체인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소셜미디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유명 홈 익스체인지 플랫폼 업체들이 연간 18만~20만원 정도의 회비를 받는다"며 유료 회원제나 중개 수수료 도입 등 다양한 수익 창출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서 대표는 공유 경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점 등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홈 익스체인지 시장이 점진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낙관했다.
"공유형 숙박 서비스인 에어비앤비 영향으로 다른 사람과 집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휴가지 원격근무 확산 등 메가 트렌드가 집을 바꾸어 살아보는 플랫폼이 필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며 당장의 수익 모델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긴 안목을 갖고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겠느냐고 반문한 서 대표는 "올해 9월까지 등록 물건 100개 이상, 거래 성사 20건 이상의 실적을 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성과 지표를 내세워 첫 투자 유치를 추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서 대표는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많겠지만 젊은 만큼 오래 버텨낼 자신이 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홈 익스체인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비홈을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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