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대통령, 코소보와 회담 앞두고 "아무것도 서명 않겠다"
코소보와 합의한 'EU 중재안' 추가 논의 하기도 전에 협상 결렬 예고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코소보 총리와의 관계 정상화 추가 협상을 이틀 앞둔 16일(현지시간) "아무것도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AP 통신에 따르면 부치치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게 "누군가 무언가에 서명하면 나도 서명할 것이고, 국민들이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오흐리드에서 무언가에 서명하는 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오흐리드는 북마케도니아 서남부에 있는 휴양지로, 이곳에선 오는 18일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중재 속에 세르비아-코소보 지도자 간의 관계 정상화 추가 협상이 열릴 예정이다.
앞서 부치치 대통령과 알빈 쿠르티 코소보 총리는 지난달 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EU가 제시한 11개 항의 관계 개선 중재안에 잠정 합의했다.
이에 따라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여권, 학위, 자동차 번호판과 같은 코소보 공식 문서를 인정하고 코소보의 국제기구 가입을 막지 않기로 했다.
그로부터 3주 만에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당시 잠정 합의한 중재안 이행을 위한 세부적인 방식과 일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부치치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결렬을 예고한 것이다. 자국 여론이 악화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 헌법은 여전히 코소보를 자국의 자치주로 간주하고 있다.
코소보 북부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독립 이후에도 사실상 자치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을 중심으로 두 국가 간에 긴장이 이어져 왔고, 지난해 말에는 세르비아계 전직 경찰관이 코소보 경찰에 체포된 것을 계기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EU와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 긴장이 고조되면 유럽 국가들의 대러시아 대응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양국 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EU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모두 EU 가입을 원한다는 점을 관계 정상화를 압박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부치치 대통령은 EU 가입을 위해서는 뼈아픈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며 대국민 설득에 나섰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극우 단체들은 코소보와 어떠한 타협도 해서는 안 된다며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가브리엘 에스코바르 서발칸 담당 미국 고위 외교관은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측이 상호 인정이 아닌 관계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거나, 반대로 코소보가 북부 지역의 세르비아계 공동체 자치권을 보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의 초점을 실현할 수 있는 관계 정상화 논의에만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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