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SVB 사태, 과도한 공포 심리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 부를 수도
(서울=연합뉴스) 미국 IT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사태에 국내 금융권과 경제계가 술렁이고 있다. 자산 277조 원 규모의 미국 16위 은행의 파산이자, 고금리로 인한 가계 부채 리스크와 부동산 급락, 경상수지 악화 등 가뜩이나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악재이니 걱정이 클 만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2의 리먼 사태 경고등'이니, '전 세계 스타트업 줄파산 위기' 등이라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처음 문을 연 한국 등 아시아 증시는 13일 차분했다. 오히려 코스피는 소폭(0.67%) 상승한 채 장을 마감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2일(현지시간) SVB 예금을 전액 보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은행이 파산할 경우 연방예금보험공사는 계좌당 최대 25만 달러까지만 보호하지만, 스타트업을 주 고객으로 둔 SVB의 경우 전체 예금의 95%가 보험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지자 취한 특단 조처다. 미국 금융당국은 SVB 파산이 벤처 기업 거래에 특화된 은행이 장기 채권을 과도하게 매입해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매우 특수한 케이스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이 은행은 지난 2021년 유동성 호황 때 2천억 달러가 넘는 예금 잔고가 쌓이자 이 돈 가운데 절반 이상을 미 국채 장기채와 주택저당채권 매입에 썼다가 지난해부터 미국의 공격적인 고금리 정책으로 예금 인출 사태가 빚어지면서 결국 파산했다. 15년 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라는 부실 자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고금리와 안전 자산 투자가 원인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미국 언론들도 SVB 파산이 리먼 사태 때와 같이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 당국이 예금 전액 보증이라는 특단 조치를 사태 발생 사흘 만에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공포심 확산이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가 작년 말 기준 SVB 파이낸셜 그룹 지분 약 307억원과 61억원 규모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제외하면 국내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의 SVB 투자 규모는 미미하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에 위기를 몰아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다. 지나친 공포감·불안심리가 형성되면 뜻하지 않은 곳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기조 등 악재로 가뜩이나 스타트업 투자 절벽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SVB 파산 사태가 이를 더욱 악화시킬까 우려된다. 미래는 4차 산업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달려 있고, 그 일선에 벤처 스타트업들이 있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곳은 이들이 아닐까 싶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