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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40년 잠든 조선회화에 새 숨결, 영국박물관 김미정 보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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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40년 잠든 조선회화에 새 숨결, 영국박물관 김미정 보존가
해외 유일 한국 미술품 보존 전문가 "번듯하게 단장해 선보여 뿌듯"…15점 보존처리
"첫 대규모 보존 사업, 국외 거점기관 목표…英박물관 작업실은 '한중일' 외교의 장"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박물관에 들어와 140년간 돌돌 말린 채 있던 조선시대 회화를 번듯하게 단장해서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며 뿌듯했습니다"
영국박물관의 한국 미술품 보존가인 김미정 박사는 9일(현지시간) 런던 영국박물관 동아시아 미술품 보존 작업실인 히라야마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이같이 말했다.
영국박물관은 최근 19세기 오륜행실도 12폭 병풍, 평생도 2폭 병풍, 묵란도, 산수도 등 15점을 보존 처리하고 이 중 10점을 한국관에 전시했다.
이는 아모레퍼시픽이 2018년부터 5년간 영국박물관에 50만파운드(약 8억원)를 지원해 진행된 '아모레퍼시픽 한국 회화 보존 사업'의 결과물이다.
외국 박물관에서 전담자를 두고 한국 미술품을 이렇게 대규모로 보존 처리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김 박사는 전했다.
김 박사는 사업 매니저 겸 보존가 역할을 하며 수장고에서 먼지가 쌓여가던 한국 미술품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는 "묵란도와 산수도 등은 1881년에 들어와 한 번도 펼쳐지지 않고 돌돌 말린 상태로 서랍에 들어 있었는데 이번에 족자로 만들거나 액자에 넣었다"고 말했다.
오륜행실도와 평생도 등 병풍은 다시 장황(전통표구)했고 호작도는 2폭 병풍으로 바꿨다.
근대 회화작품인 장우성의 '새안'은 흰색 바탕에 진 얼룩을 제거했고, 월북 작가 임홍은의 1950년 전후 작품 '포스터를 위한 준비그림'도 손질했다.
보존처리라면 가는 붓을 섬세하게 다루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실제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간 작업은 소장품 상태 조사, 보존 우선순위 선정, 재료 구하기 등이다.
김 박사는 "영국박물관에 동전을 제외한 한국 소장품 1천879점 중 회화는 544점인데, 2년간 병풍 12점, 두루마리·족자 45점을 조사하고 나니 코로나19로 봉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존은 인문학적 지식과 기술이 모두 필요한 일"이라며 "우선순위를 정할 때 국내외 미술사·보존 전문가들에게 자문했고, 새로운 기법을 모색하려고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도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풍 장황을 할 때는 시대와 작품에 맞는 비단을 구하려고 한국 지방 곳곳을 뒤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다양한 부서 동료들의 공감과 협조를 끌어내는 일도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는 "한 대에 1억원 상당하는 디지털현미경 등 첨단 기기를 들여와 활용하는 동시에 한국 프로젝트가 공동 이익이란 인식을 심었다"며 "전통 기법을 고수하던 동료들이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박사는 영국박물관뿐 아니라 국외 유일한 한국 미술품 보존가라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1994년 홍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서양 지류문화재 보존 복원을 배우려고 프랑스 판테온-소르본대학의 학·석사 통합과정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조언으로 석사 논문에서 한지를 다루면서 방향을 바꿨고 소르본대학에선 2018년엔 조선시대 회화의 장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박물관과는 2009년 6개월 인턴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12년부터 리서치 펠로, 2014년부터는 동아시아 회화 보존가로 일했다.
그는 "루브르박물관은 보존 처리를 외부 전문가들이 하지만 영국박물관은 자체 시스템을 갖춘 점이 다르고 아시아 소장품도 많다"며 "가서 배워보라는 교수님 권고로 왔더니 히라야마 스튜디오에 7년 만에 처음 등장한 인턴이면서 첫 한인이었다"고 말했다.
히라야마 스튜디오는 1994년 일본 히라야마 재단 지원으로 영국박물관 옆 은행 건물을 인수해 설립한 것이다.
층고가 높고 뻥 뚫린 공간을 일본팀 2명, 중국팀 3명 등과 김 박사가 함께 썼다.
바닥엔 다다미가 깔려있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일본 전통 방식으로 무릎을 꿇고 일하는 낮은 작업대와 중국에서 지원한 높은 작업대가 섞여 있었다.
김 박사는 "한중일 3개국 담당이 모여 있는 보존 작업실은 영국박물관에만 있다"라며 "외교의 장이며 소프트파워를 겨루는 장이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번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작품 몇점 보존을 넘어서 작업 모델을 만들고 영국박물관을 국외 한국 회화 보존 거점기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 워크숍을 하고 코리아파운데이션을 통해 보존 분야 인턴십을 운영했으며, 작업 후에는 작품 전시, 사업 결과 보고서 발간, 심포지엄 등으로 성과를 공유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 박사는 "한국 문화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 소장품 보존처리와 관련해 관심과 고민도 커지고 있다"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측도 방문해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고 갔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 미술품 보존처리에서도 과학적 방식과 국제적 표준 준수 등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말이면 영국박물관의 아모레퍼시픽 사업은 종료된다. 그는 "또 새로운 기회를 만나 한국 미술품 보존 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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