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호박벌, 시범조교 행동 보고 설탕물 퍼즐상자 열어
경험많은 벌 행동 사회적 학습해 군집내 전파 '문화' 형성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호박벌이 경험 많은 다른 벌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을 갖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퀸 메리 런던대학' 연구진은 호박벌이 사회적 학습 능력을 갖춰 먹이활동 과정에서의 특정 행동이 군집 내로 금세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PLOS)이 발행하는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 최신호(7일자)에 발표했다.
PLOS와 퀸 메리 런던대학 등에 따르면 영장류와 같은 사회적 동물은 다른 구성원의 행동을 보고 학습할 수 있으며, 벌들도 이런 학습 능력이 있다는 이전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군집 내에서 새로운 행동이 어떻게 확산하는지는 불투명했다.
감각·행동생태학 교수 라즈 치트카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를 규명하기 위해 적색 탭은 시계 방향, 청색 탭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밀 때 이당류인 '수크로스'(蔗糖) 용액에 접근할 수 있는 두 가지 해결책을 가진 퍼즐 상자를 고안한 뒤 총 6개 호박벌 군집을 대상으로 6∼12일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했다.
우선 '조교'역을 맡은 호박벌을 훈련해 적색이나 청색 탭을 밀어 수크로스 용액을 얻는 행동을 익히게 한 뒤 다른 호박벌들에게 시범을 보이자 압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시범 호박벌이 보여준 행동을 따라했다.
이는 시범 벌이 가르쳐준 것과 다른 탭을 선택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뒤에도 이어졌다. 적색이든 청색이든 시범 벌이 보여준 방식대로 탭을 미는 것은 전체 군집에서 유지됐으며, 평균 98.6%에 달했다.
시범 호박벌이 없는 군집에서도 일부 호박벌이 상자를 여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성공률은 아주 낮았다. 호박벌이 하루에 연 퍼즐 상자는 시범 호박벌 군집에서는 하루 평균 28개에 달했지만 시범 호박벌이 없는 비교 군집에서는 하루 1개에 불과했다.
청색이나 적색 탭을 밀어 수크로스를 얻게 각각 훈련된 호박벌을 같은 군집에 넣고 시범을 보인 결과, 초기에는 호박벌 사이에서 두 가지 선택이 혼용되다가 궁극에는 하나로 수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는 영장류나 조류에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호박벌 사이에서도 사회적 학습이 새로운 행동의 전파에 중요하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논문 제1저자인 앨리스 브리지스 박사는 "작은 뇌를 가진 무척추동물인 호박벌에서 얻은 이런 결과는 영장류와 조류 등에서 문화 형성 능력을 입증하는 데 이용돼온 비슷한 실험 결과를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치트카 교수는 "벌이 다른 벌의 행동을 보고 배워 행동 습관을 형성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증거를 추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벌이나 개미, 말벌 등이 형성한 '생경한 문명'은 몸집이 작고 본능적으로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 연구는 새로운 혁신이 군집 내에서 소셜미디어 밈처럼 확산할 수 있어 호박벌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적 도전에 수세대에 걸친 진화적 변화보다 훨씬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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