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남편 이어 4년째 신한촌 기념탑 지키는 60대 고려인 여성
고려인 3세 이 지나이다 씨 "사명감으로 관리, 자부심 느껴"
"향후 블라디보스토크시가 관리 맡더라도 할 수 있는 일 할 것"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세상을 떠난 남편이 신한촌 기념탑에 많은 애정을 쏟았기에 방치해 둘 수 없었습니다.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시가 이 시설을 직접 관리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라 걱정을 덜게 됐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 거주하는 고려인 3세 이 지나이다(65)씨는 연해주 지역 대표 항일 유적인 신한촌 기념탑을 2019년부터 관리하고 있다.
신한촌 기념탑은 러시아 극동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가 후원금 3억여 원을 들여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카야 거리에 세운 시설이다.
현지 고려인 후손들에겐 그들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당초 기념탑 관리는 시설 건립 초기과정부터 많은 도움을 줬던 이씨의 남편인 고려인 3세 이 베체슬라브 씨가 줄곧 맡아왔지만, 지병으로 별세한 뒤로는 부인 이씨가 이를 대신해 왔다.
제104주년 3·1절인 1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이씨는 "남편은 신한촌 기념탑이 한국의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아픈 역사도 간직한 시설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애정을 쏟았다"며 "지병이 악화해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기념탑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모습을 계속 지켜봤기 때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명감으로 기념탑을 관리했다"고 전했다.
실제 남편 이 베체슬라브 씨는 기념탑 완공 후 누군가가 시설에 낙서하고 노숙자가 들어와 잠도 자는 일 등이 빈번히 발생하자 2000~2001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협조를 구해 시설 주위에 철제 펜스를 설치했다.
이후 한국인 관광객 등이 이곳을 찾으면 직접 현장으로 나가 자물쇠로 잠가놓은 출입문을 열어주며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또 관광객들이 기부한 돈이나 자비를 들여 기념탑 주변을 청소하고 주변에 꽃과 나무도 심었다.
부인 이씨 역시 관리를 전담하게 된 이후로는 남편이 생전에 했던 것처럼 자비를 들여 기념탑을 청소하고 한국 관광객들이 올 때면 직접 나가 이들을 맞이했다.
방문객들이 이러한 노력을 알아줘 감사 인사를 전할 때는 뿌듯함도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 관광객들이 방문해 감사 인사를 할 때는 감동을 하기도 했지만 '남편이 받아야 할 인사를 대신 받는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이씨 부부는 20년 넘게 신한촌 기념탑 관리에 공을 들여왔지만, 최근 들어 한국총영사관은 블라디보스토크시에 시설 관리를 직접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한촌 기념탑이 건립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당국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까닭에 이번 기회에 블라디보스토크시에 소유권을 넘겨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런 생각에 이씨뿐만 아니라 기념탑 건립 주체인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도 동의했고, 블라디보스토크시 역시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시가 기념탑 소유권을 정식으로 갖는 절차를 마무리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씨는 "블라디보스토크시가 관리를 맡게 되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기념탑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예전처럼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헌화를 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시 한 호텔에서는 연해주 지역 고려인민족자치회 및 연해주 선교사협의회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석한 3·1절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연해주 한인회는 이 자리에 이씨도 초청해 그간 묵묵히 신한촌 기념탑을 관리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이에 이씨는 "세상을 떠난 남편에 이어 저와 가족들이 신한촌 기념탑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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