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집값 하락 충격…수도권 유망 공공택지도 안 팔린다
LH, 12월 공동주택용지 75%가 미분양…PF 경색 겹쳐 건설사 매입 꺼려
3월 본격 공급 앞두고 LH 비상…지난 10일엔 건설사 대상 비공개 간담회
적격성 평가 지표 완화·택지 전매 허용 등 규제완화 방안 나올 듯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아파트 지을 땅이 안 팔린다.
최근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미분양이 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자금 조달까지 어려워지면서 건설사들이 신규 택지 매입에 몸을 사리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가을까지 잘 팔리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동주택용지는 최근들어 미분양이 크게 늘며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LH는 공동주택용지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완화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 LH 작년 12월 분양 택지 75%가 미계약…고금리·집값 하락, PF 경색 탓
최근 강남의 고가 민간 주택 부지가 공매에 부쳐지는 등 민간 택지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공공택지 미분양도 급증하고 있다.
20일 LH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입찰 공고를 내고 분양에 들어간 공동주택용지 총 8개 필지 가운데 매각이 완료된 필지는 인천 검단과 경북 칠곡 북삼지구 아파트 용지 2개뿐이며, 전체의 75%인 6개 필지는 신청기업이 없어 유찰됐다.
남양주 진접2 주상복합용지 2개 필지를 비롯해 군포 대야미 주상복합용지, 구리 갈매역세권 및 김포 한강신도시 아파트 용지 등 수도권 유망 택지들이 줄줄이 미분양됐다.
지난해 10월까지 LH의 토지 매각 실적은 양호했다. 아파트 청약시장이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분양가 상한제 시행 등으로 민간택지의 경쟁력이 사라지면서 공공택지로 건설사들이 대거 몰렸다.
LH에 따르면 지난해 미매각 공동주택용지는 총 32개 필지, 1조7천억원 규모로 최근 5년 내 최저수준이다.
그러나 11월 이후 미매각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면서 분양성이 크게 악화된데다 미분양까지 늘고 있어 건설사들이 택지 매입을 꺼리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매각 공고된 17개 공동주택용지도 후반부에 공급된 화성 동탄신도시와 부천 원종·평택 소사벌 등 6개 필지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시행사나 정비사업 조합 등 사업주체 사정상 일정에 맞춰 분양을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분양 우려로 신규 분양을 대부분 중단한 상태"라며 "앞으로 미분양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택지 매입 검토도 당분간 미루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분양 물량은 총 6만8천호로, 정부가 위험 수준이라고 보는 20년 장기 평균(6만2천호)을 넘어섰다.
건설업계는 올해 2월까지 발생한 미계약분을 고려하면 전체 미분양이 현재 7만∼8만호에 달하며 올해 안에 10만호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터진 레고랜드 사태도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택지 매입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자금 조달 가능성과 미래의 분양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당장 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자가 급등하는 등 사업 전반에 걸쳐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민간 택지는 물론, 공공택지 택지 매입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값은 떨어졌는데 LH의 땅값이 높다는 점도 미계약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인천 검단 공동주택용지의 경우 2020년에 3.3㎡당 427만원에 공급됐는데 지난해 12월 분양된 공동주택용지는 분양가가 3.3㎡당 654만원으로 53%나 상승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획일적인 감정평가로 땅값을 책정하면서 최근 사업성에 비해 LH 땅값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며 "집값이 다시 오르거나 분양조건을 개선하지 않는 한 분양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LH, 3월 신규택지 공급 앞두고 비상…택지 전매제한 완화 등도 검토
공동주택용지 미분양이 늘기 시작하면서 국토교통부와 LH에는 비상이 걸렸다.
수도권 공공택지와 3기 신도시 조성을 통해 공급 확대와 집값 안정을 꾀하겠다는 정부 입장에서 택지가 안팔리면 이러한 정책 목표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H는 올해 3월부터 공동주택용지 약 60개 필지(잠정)를 공급할 계획인 가운데, 지난 10일 건설회관에서 주택 건설사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본격적인 신규 택지 공급을 앞두고 최근 미분양 증가에 따른 건설업계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해까지 계열사를 동원한 '벌떼입찰' 방지를 위해 1사1필지 제도를 도입하고, 택지 청약자격과 전매제한을 강화하는 등 공급 규제를 강화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주택업계의 한 관계자는 "LH가 건설사들을 불러 모아 공동주택용지 판촉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참여 건설사들은 이 자리에서 LH에 토지리턴제 도입, 택지 전매제한 완화, 공공택지 대금 납입조건 완화 등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지리턴제는 토지 매매계약을 완료하고 일정 기간 경과후 매수자(건설사)가 요청할 경우 계약금을 포함한 원금 전액을 돌려주는 것으로, 앞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도입된 적이 있다.
LH는 현재 추첨방식 공동주택 용지 분양시 적용하는 '적격성 평가지표'를 개선해 분양 참여 업체 수를 늘리는 방안을 국토부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격성 평가는 친환경·에너지·건설안전 등 공적인증을 점수화해 12점 만점 중 5점 이상을 받은 업체에만 공동주택용지 청약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건설사의 미분양 증가와 PF 시장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를 지원하기 위해 공동주택용지 전매제한을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금리와 PF 문제 등으로 민간의 신규 땅작업이 일시 중단된 상태에서 공공택지 공급마저 차질을 빚게 되면 2∼3년 뒤 주택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며 "택지 가격을 낮추고 잔금 등 대금 납부 조건과 일정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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