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군 뱀섬 영웅담 부풀려졌다…"전사 아닌 생포" 입연 당사자
"'수비대원 13명 몰살' 사실 아냐…러시아 수용소 끌려가 구타·고문"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전 개전 직후 러시아군의 항복 요구에 "꺼지라"고 응수하고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뱀섬 수비대원들의 영웅담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뱀섬(우크라이나명 '즈미니 섬')을 지키다 러시아군에 포로가 됐다가 풀려난 전 우크라이나 해병대원 유리 쿠즈민스키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정황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섬을 지키다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던 우크라이나 수비대원 가운데 1명이다.
러시아 수용소에서 당한 구타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쿠즈민스키는 당시 스무 살로, 섬을 지키던 해병대원들 가운데 가장 어린 신참이었다.
그는 동트기 전 섬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몇 시간 동안이나 막사 뒤에 숨어 기도만 했다고 털어놨다.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살펴본 쿠즈민스키는 자신이 속한 작은 부대가 우크라이나 저항군의 상징이 된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우크라이나 언론은 국제 운송 주파수 채널을 통해 뱀섬 전황을 그대로 중계했다.
러시아 군함 '모스크바'가 섬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수비대원 13명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자 한 우크라이나 무전병이 "러시아 군함은 꺼져라"라고 응수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후 섬은 러시아 전투기와 군함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우크라이나 수비대원들은 모두 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비대원들의 영웅담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러시아군에 "꺼지라"고 외친 우크라이나 군인은 현지 우표에 그려질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뱀섬 전투 얘기는 다른 많은 전쟁 영웅담처럼 다소 과장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타임스는 소개했다.
실제론 당시 섬에 28명의 국경수비대원, 44명의 해병대원, 6명의 방공레이더 운영요원 등 우크라이나 군인 78명과 민간인 2명을 포함해 모두 80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전사하지도 않고 모두 생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쿠즈민스키는 "어디서 13명이란 숫자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쿠즈민스키에 따르면 그와 동료 군인들은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거나 전기충격기로 고문을 받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모두 총살당할 것이니 러시아 국적을 얻으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쿠즈민스키는 지난해 11월 말 포로 교환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뱀섬을 지켰던 78명의 우크라이나 군인 중 절반은 여전히 러시아 감옥에 남아 있다.
러시아의 보복 우려 때문에 러시아군에 "꺼지라"고 응수한 무전병의 신원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쿠즈민스키는 자신과 동료들 모두 함구 서약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뱀 섬 공격을 주도했던 러시아 흑해함대 순양함 '모스크바'는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의해 침몰당했고, 러시아군은 6월 섬에서 철수했다.
뒤이어 우크라이나도 뱀섬에 국기를 게양하기 위해 자국 군인들을 보냈지만 곧바로 철수시켰다.
뱀섬은 현재 러시아군이나 우크라이나군이 없이 비어있는 상태라고 신문은 전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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