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지역 해제 한 달…"급매물 팔리지만 본격 회복은 역부족"
1·3대책 후 서울 아파트 매수 문의 증가…"저가 매물 소화중"
매수자 "급매 아니면 안 사" vs 매도자도 "급할 것 없다" 호가 격차 커
"고금리 부담에 거래 회복 미미…추가 규제완화 없으면 계단식 하락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지난 3일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지역 해제에 나선 지 한 달 만에 서울 아파트 시장에 문의가 늘고 꽉 막혔던 거래 시장에도 숨통이 다소 트이는 모습이다.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각종 세제 및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이들 들어 매매와 함께 전세 거래도 소폭 늘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그러나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고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는 여전해 본격적인 거래 증가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 급매 일부 팔렸지만…집주인 "급할 것 없다", 매수자는 "가격 더 내려야" 동상이몽
2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극심한 거래 절벽에 시달리고 있는 서울 아파트 시장이 최근 3개월 연속 미미하게나마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733건으로 전월(559건)에 비해 31% 늘었고, 12월 들어 다시 828건으로 전월 대비 13%가량 증가했다. 두달 연속 증가에 이어 이달도 거래량이 늘어날 조짐이다.
1월 현재 서울 아파트 매매 신고건수는 총 428건으로 12월 거래량의 절반을 넘었다. 1월 거래의 신고 기한이 다음달 말까지인 점을 고려하면 이달 거래량도 12월 거래량을 다소 웃돌 것으로 점쳐진다.
실제 서울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이달 초 규제지역 해제 이후 매수 문의가 조금 늘었고 단지별로 2∼3건 거래가 이뤄졌다"는 설명이 많았다.
다만 대부분의 매수자들이 급매물만 찾으면서 실거래가는 더 하락했다.
상계동 보람아파트 전용면적 68㎡는 이달들어 6억원에 급매물이 팔렸다. 이 아파트의 다른 일반 매물 가격이 현재 6억5천만∼7억원인 것에 비해 5천만원 이상 싼 것이다.
이 지역 중개업소 대표는 "지난해까지는 급매도 잘 안팔렸는데 그나마 이달 규제완화후 매수문의가 늘었고, 급매부터 소진이 되고 있다"며 "집주인들이 호가를 높이진 못하지만 가격이 더 내리진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마포구 아현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마포 래미안푸르지오는 이달 들어서만 전용 84㎡ 2건이 15억5천만∼16억원 선에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현재 나와 있는 매물이 16억∼17억원 선인데 이보다 최대 1억원 이상 낮은 금액이다.
아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급하게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아야 하는 집주인이 급매에서도 더 가격을 낮춰 15억5천만원에 매도한 것"이라면서 "규제완화로 지난달보다 매수자들의 입질이 늘고 적게나마 거래도 이뤄지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급매물도 줄고 있다. 최근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양도세 등 세제 완화로 사정이 급하지 않은 집주인들은 급매물 출시를 보류한 것이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가 1년 더 연기됐고, 보유세도 낮아져서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보유자들이 급하게 집을 팔 이유가 없어졌다"며 "강남권은 여전히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지만 세금이나 15억원 초과 대출 허용 등 금융 규제가 풀리면서 급매물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급매물이 팔리며 일부 강남권 아파트들은 가격이 올라서 거래되기도 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송파구는 지난 12월 거래 신고건수가 87건으로, 전월 대비 71% 늘었다.
잠실 트리지움 전용 84.97㎡는 이달에만 17억7천만원, 17억9천만원에 순차적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전용 114.7㎡와 149.45㎡도 이달에만 현재까지 각각 2건의 거래가 신고됐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리센츠 전용 84㎡도 지난달까지 19억원대 매물은 대부분 소진됐고 현재 1층을 제외하면 20억∼22억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며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이 풀리면서 이달 들어 매수 문의는 꾸준히 이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수의 매수자는 여전히 집값 하락, 경기침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비싸게는 안 산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매도-매수간 힘겨루기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동구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수자와 매도자간의 호가 격차가 2억원 이상 벌어져 거래가 쉽지 않다"며 "급매물 소진 후에는 다시 거래 절벽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 하락기를 틈타 가족 등 증여성 특수관계인 직거래도 늘고 있다.
가족 등 특수관계인 거래시 신고가액이 최근 3개월 내 거래된 실거래가보다 30%와 3억원 중 적은 금액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 정상 거래로 인정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최근 중개업소를 거치지 않은 직거래의 다수는 일반 급매물보다도 거래가격이 현저히 낮게 신고되는데 대부분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특수관계인간 거래로 보여진다"며 "이는 절세를 위한 직거래여서 일반적인 거래량 증가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 역전세난 속 1월 전세 이사철 반짝 거래…"금리 부담에 본격 회복은 어려워"
전세시장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난'이 심화한 가운데 이달 들어 신규 거래가 다소 늘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3월 신학기 이사철을 앞두고 일부 급전세를 중심으로 '반짝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지난달까지는 전세도 안나가더니 이달 들어 시세보다 싼 물건은 몇 건 계약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도 "신학기를 앞두고 있어 작년에 비하면 전세 거래도 이뤄지는 편"이라며 "다만 2년 전보다 보증금을 최고 4억∼5억원은 내줘야 해 집주인들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리센츠 전용 84㎡의 경우 현재 전세가 10억원 선이다. 2년 전 임대차2법 시행 직후에는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최고 14억∼15억원까지 올랐던 것들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 차액을 돌려주거나, 차액만큼 세입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역월세'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 덕에 최근 매매, 전세 거래에 숨통이 트였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본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여전히 고금리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값도 최근 하락폭은 둔화했으나 약세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결국 금리 인하가 시작돼야 본격적으로 거래가 늘고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며 "당분간은 금리 부담 때문에 사정이 급한 급매물 위주로 매물 소화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리나 경제여건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집값이 계단식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급매물 소화 과정을 거치며 가격이 소폭 오르더라도 매수세가 다시 감소하면서 낮은 가격이 시세로 굳어지고, 거래를 위해 가격이 추가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강남3구·용산까지 모두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도 없애는 등 추가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안전진단 통과 호재에도 불구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매수세 유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재산권 행사를 위해 허가구역도 풀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가 거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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