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후 첫 연말 맞은 찰스 英국왕, 다문화·종교 포용 행보
"기독교 전통 강조한 전임 국왕과 달라"…인종차별에도 단호한 입장
"비관적 예측 비해 인기 좋아"…내년 5월 대관식 시험대, 메시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즉위 넉달 째에 접어든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첫 연말을 맞아 다양한 문화와 종교 행사에 참여하며 포용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즉위 후 첫 연말과 성탄절을 맞은 찰스 3세는 기독교 전통을 강조해온 전임 국왕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찰스 3세는 25일 성탄절을 맞아 윈저성 내 여왕이 묻힌 성 조지 예배당에서 연설하고 이를 녹화해 TV로 중계했다.
그는 연설에서 "크리스마스는 물론 기독교의 기념일이지만, 어둠을 이겨내는 힘은 신앙과 신념의 경계를 초월해 기념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회와 유대교 회당과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 (불교) 사원, 시크교 사원 등 다양한 종교를 언급하며 "매우 불안하고 힘든 시기에 좋은 일을 해 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찰스 3세의 이번 연설은 성탄절이면 기독교적 신앙을 강조해온 엘리자베스 여왕과 현저한 대조를 이뤘다고 NYT는 전했다.
왕세자 시절부터 다양한 종교에 대한 관심과 포용력을 보인 찰스 3세는 즉위 뒤에도 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왔다.
찰스 3세는 이달 16일 즉위 100일을 맞아 런던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 센터를 방문해 유대교 전통 명절 '하누카'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유대교도들과 함께 이스라엘 전통춤인 '호라'를 췄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의붓자매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에바 슐로스(93)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찰스 3세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도 세심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난 10월 리시 수낵 총리가 취임 후 버킹엄궁을 찾았을 때 신임 총리가 인도계라는 점을 고려해 인도의 대규모 축제인 디왈리를 기념하는 간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인종차별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보이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영국 왕실의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달 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최측근이자 윌리엄 왕세자의 대모인 수전 허시(83)가 왕실 행사에 참석한 흑인 여성에게 거듭해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서 영국인이라는 여성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사건 직후 영국 왕실은 허시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하며 허시를 파면했다.
당시 찰스 3세는 왕실보다 더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으면서 어떠한 인종 차별적 행동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NYT는 전했다.
찰스 3세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인 편이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찰스 3세에 대한 긍정 평가는 63%, 부정 평가는 28%로 즉위 직후보다는 후퇴했지만, 여전히 긍정적이다.
영국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지난주 사설에서 찰스 3세의 즉위 100일에 대해 논평하면서 "그는 왕세자였을 때 나온 비관적 예측보다 그가 더 기민하고 세심하며 인기가 좋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진단했다.
NYT는 찰스 3세 앞에는 내년 5월 6일로 예정된 대관식이라는 커다란 시험대가 놓여있다고 전했다.
찰스 3세가 기독교 의식인 대관식에서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통합하기 위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찰스 3세는 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별세한 지 며칠 뒤 종교 지도자 30여 명을 버킹엄궁에 초대한 자리에서 "나는 헌신적인 성공회교도이지만 신앙을 위한 공간 확보를 포함해 우리나라에 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말한 바 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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