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사상 최대 무역적자…반도체 경쟁력 강화 시급하다
(서울=연합뉴스) 올해 무역적자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지난 10일까지 474억6천400만 달러 적자였으니 이런 추세라면 남은 20일간 30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수출 둔화까지 겹치며 무역수지가 1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은 잇따라 나왔지만, 그 규모가 너무 크다. 산업연구원의 426억 달러, 무역협회의 450억 달러 예측도 넘어섰다. 연간 기준으로 볼 때 종전 최대 적자였던 1996년(206억2천400만 달러)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과거엔 무역적자가 대부분 당해 연도의 문제로 끝나고 흑자로 전환됐지만, 올해 무역적자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리를 선진국으로 이끈 경제력의 근간은 무역인데, 무역적자가 누적되면 한국 경제의 상승세도 여기서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올해 무역수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급증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올해 들어 지난 10일까지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스·석탄의 합계 수입액은 1천804억1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천44억6천만 달러)보다 72.7% 급증했다. 정부가 유류세를 대폭 인하하고 전기료 인상을 자제한 것이 기업과 가계의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한 둔감성을 불러와 에너지 수입 물량이 오히려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고유가 충격을 경감시키려는 정부 입장에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출 감소세다. 우리나라 수출의 핵심인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보다 27.6% 줄었다.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감소다. 감소 폭은 9월 -4.9%, 10월 -16.4%, 11월 -28.5%로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이 외에 철강 제품(-37.1%), 자동차 부품(-23.2%), 무선통신기기(-46.6%), 정밀기기(-27.8%) 등의 수출도 감소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이 34.3%나 빠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불가피한 외적 요인으로 인한 적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수출 경쟁력은 정부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을 통해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기업의 가격 경쟁력 제고와 수입 공급망 국산화를 위한 전략적 정책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무역 실적을 떠나 국가 생존의 관점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요즘 같은 기술 패권 시대에 반도체는 국방과 마찬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지난 8월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발의한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미국이나 EU 등이 발 빠르게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우리는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다. 여야가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특별법은 아직 산자위 소위도 통과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세액 공제를 다루는 기재위 조세 소위는 아직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려 국가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인데 우리는 덜 급하고 덜 중요한 것 때문에 급하고 중요한 것이 볼모로 잡히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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