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탄핵소추' 페루 대통령 결국 탄핵…첫 여성대통령 탄생(종합)
카스티요, 탄핵 전 '의회해산' 시도로 반격…부통령·내각 반발
의회, 압도적 탄핵안 가결 후 새 정부 출범…16시간 대격랑 끝내
경찰, '부패 혐의'로 카스티요 구금…탄핵 찬반 갈려 정국 혼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미 페루의 페드로 카스티요(53)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회에서 가결 처리됐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3번째 탄핵 위기에 몰렸던 카스티요 대통령은 곧바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어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새 정부 출범을 알렸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페루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다.
페루 내부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국론이 갈려져, 정국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 탄핵 찬성에 여당까지 가세…"정치적 무능"
7일(현지시간) AP·AFP·로이터통신과 페루 일간 안디나·엘코메르시오 등에 따르면 페루 의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강행 처리했다.
탄핵안은 재적의원(130명) 3분의 2가 넘는 87명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되는데, 의결정족수를 훨씬 넘긴 101명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여당 50석과 야당 80석으로 구성된 의회 의석 분포를 고려하면 20명 이상의 여당 의원도 대통령 탄핵에 가세한 것으로 분석됐다.
호세 윌리엄스 사파타 의장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위헌적인 방식으로 그 기능을 방해하려 했다"며 '정치적 무능'을 대통령 탄핵 사유로 설명했다.
◇ 페루 첫 여성 대통령 취임…"정치적 휴전 요구"
페루 정부는 규정에 따라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곧바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께 취임 선서를 한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 나머지 임기(2026년 7월) 동안 정부를 이끌게 된다.
페루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휴전을 요구한다"며 "정파를 떠나 민심을 추스를 수 있는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 카스티요 '의회 해산 선언' 반격 시도 좌절
앞서 의회가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자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의회 해산 카드로 맞섰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의회에서 자신의 탄핵안을 다루기로 한 이날 0시께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비상정부' 수립을 선언한 뒤 "현재의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법치와 민주주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에 따른 결정"이라고 당위성을 내세우면서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경찰 등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이날 밤부터 야간 통행(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4시)을 금지하는 시행령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페루 각계에서는 '국가의 정치적 위기를 악화하는 쿠데타 행위'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카스티요 정부의 2인자였던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마저 트위터에 "나는 의회를 해산함으로써 헌법 질서를 깨뜨리려는 페드로 카스티요의 결정을 거부한다"며 반기를 들었다.
세사르 란다 경제·외무장관도 의회 해산 방침 선언을 '카스티요의 셀프 쿠데타'라고 규정한 뒤 "정부 각료가 모르는 사이 이런 위헌적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다른 3명의 장관과 함께 사임했고 곧바로 3∼4명의 다른 장관도 스스로 물러났다.
다니엘 소리아 페루 법무장관실 역시 카스티요 대통령에 대한 형사 고발을 예고했고, 헌법재판소장은 국회가 볼루아르테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길 수 있도록 예정대로 탄핵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국론 분열…외국에서도 '우려'
대통령의 탄핵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찬반 집회를 개최하는 등 페루 사회는 극심한 혼란 양상을 보인다.
외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리사 켄나 주페루 미국대사는 트위터에 "미국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를 폐쇄하려는 시도를 번복하고, 의회가 헌법에 따라 주어진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썼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 역시 페루의 정치적 안정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달 중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중남미 태평양 동맹 회의는 취소됐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 페루 경찰은 이날 오후 "페드로 카스티요를 구금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국가 기관 중 처음으로 카스티요를 '전 대통령'으로 언급하며 의회 해산 시도에 대한 혐의점을 잡고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 취임 16개월여 만에 '탄핵 불명예'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에 취임한 이후 2차례의 탄핵 위기는 넘겼으나, 3번째에는 결국 대통령직을 박탈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는 작년 7월 취임 일성으로 "부패 없는 나라"를 내세웠으나 취임 초기부터 부패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에 휩싸였으며 직권남용을 비롯해 6건의 범죄 가능성에 대해 검찰의 예비조사 또는 수사까지 받고 있다.
앞서 페루 야당은 지난해 10월에 의원 28명의 서명을 받아 탄핵소추 제안서를 제출한 데 이어 두 달 뒤 탄핵안 통과를 시도했으나, 찬성 46표, 반대 76표, 기권 4표로 부결됐다.
이어 지난 3월에는 탄핵소추안이 찬성 76표, 반대 41표로 발의되긴 했으나 탄핵안 자체는 토론 끝에 찬성 55표, 반대 54표, 기권 19표로 또다시 부결됐다.
하지만 이날 탄핵안 가결로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대통령 임기 중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특권도 잃게 됐다.
◇ 페루 대통령의 '잔혹사'
페루는 정치권의 부패가 끊이지 않고, 정치세력이 파편화돼 있어 최근 몇 년 새 대통령의 중도 낙마가 반복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하는 한국 등과는 다르게 의회에서의 의결로 곧바로 탄핵당하는 등 절차가 비교적 간소한 것도 한 배경이다.
페루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권과 심판권이 의회에 주어져 있어서 탄핵 발의와 가결을 위한 정족수 이상을 확보하기만 하면 사실상 의회를 견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페루 의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번이 7번째다. 2000년 11월 탄핵으로 면직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제외한 6차례는 최근 5년 사이에 벌어졌다.
2016년 취임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 탄핵안 가결 하루 전 스스로 사임했다.
당시 부통령으로서 직을 승계한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의회에서 탄핵안이 의결돼 면직됐으며, 이를 계기로 페루는 닷새 동안 3명의 대통령을 맞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walde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