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부역자 잡아라"…점령군 떠나자 둘로 갈린 우크라 마을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에 반년 넘게 점령됐다가 최근에야 해방된 일부 마을에서 '러시아군 부역'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1개월 전 우크라이나군에 탈환된 헤르손주(州) 셰우첸키우카 마을 등에서는 부역 여부를 놓고 주민들이 둘로 갈려 날을 세우는 양상이 나타났다.
지난 3월 러시아군이 처음 이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만 해도 셰우첸키우카 주민들은 서로 거리낌 없이 끈끈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인 러시아군 병사 대신 우크라이나 동부를 장악한 친러 분리주의 세력에 소속된 병력이 진주한 까닭에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거부감도 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령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을은 친러와 반러로 갈라지게 됐다.
러시아가 식수와 식량을 배급받으려면 신상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러시아 여권 발급을 권고하는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자국에 편입하기 위한 '러시아화' 작업에 들어가자 일부 주민이 합병에 찬성하며 적극 협력하고 나서서다.
한 40대 여성은 '러시아 여권을 어디서 발급받을 수 있냐'고 묻고 다니는 등 공공연하게 친러 행보를 보였고, 이 여성의 남편은 같은 마을 청년을 러시아군에 밀고하기도 했다고 현지 주민들은 주장했다.
러시아군이 고른 친러 인사들로 채워진 점령지 행정당국이 지난여름 마을 주민에게 1인당 5천 흐리우냐(약 18만원)를 나눠주기로 하면서 분열은 더욱 선명해졌다.
일부 주민은 이를 "피 묻은 돈"이라며 거절했으나, 친러 성향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돈을 받았다고 WP는 보도했다.
헤르손을 비롯한 러시아군 점령지 행정당국은 몇 주 뒤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로의 영토 편입을 결정했다.
해당 투표는 비밀투표 등 절차적 기본 원칙을 어긴 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성공하면서 셰우첸키우카 주민들은 9월 점령군 치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부역자 색출이 시작되고 주민들 간에도 반목이 이어지면서 이들이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모양새다.
한편, 마을 청년을 러시아군에 밀고한 것으로 알려진 남성은 부역자로 지목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에 체포됐지만 이틀 만에 풀려났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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