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UAE 반대 물리치고 석유 감산 고집했다"
WSJ "UAE, 비밀특사로 대통령 친동생 국가안보보좌관 보내 설득 시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감산 추진을 강행하기 전에 아랍에미리트연방(UAE) 측이 이를 반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UAE는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의 친동생인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하얀 국가안보보좌관을 올해 9월 비밀특사로 파견해 무함마드 왕세자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으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와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산유국 단체 '오펙 플러스'(OPEC+)가 석유 생산량을 감축하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에 대해 UAE는 이 시점에서 석유 감산이 산유국들에게 경제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며, 이를 강행할 경우 미국의 분노를 일으키고 산유국들이 러시아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위험이 있다며 감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무함마드 왕세자는 감산 추진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였다고 WSJ는 익명 취재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UAE 정부 공보 담당자는 WSJ 기사에 대해 셰이크 타흐눈 국가안보보좌관, 사우디 관계자들, 석유 감산에 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UAE와 사우디는 오랫동안 에너지와 안보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 왔으나 이번에 입장차가 벌어진 것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일부 회원국들 사이에 이번 감산 조치가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음을 보여 준다고 WSJ는 분석했다. 다만 OPEC과 OPEC+ 회의 당시 UAE는 사우디의 요구대로 공개적으로는 감산 결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UAE가 셰이크 타흐눈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밀특사로 파견한 것은 그동안 석유 정책을 주도해온 사우디에 도전장을 던지려는 UAE의 커져가는 야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WSJ는 덧붙였다.
사우디는 지난달 5일 23개 회원국들이 모인 OPEC+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 줄이는 방안을 관철시켰다. 11월 1일 기준으로 국제 원유 가격은 배럴당 약 94 달러로, 9월말 감산 소문이 퍼지기 전보다 약 15% 높다.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OPEC+의 감산 계획을 사우디가 주도해 밀어붙인 데 대해 미국 측은 불쾌감을 명확히 표현했다.
석유 감산에 따른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 대응을 어렵게 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한 국제제재를 무력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OPEC+의 감산 계획 발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관계가 과연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백악관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사우디 측은 감산 조치가 정치적 동기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며 사우디뿐만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경제적으로 필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말 사우디 에너지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은 원유 감산 조치를 미루는 것이 시간낭비였을 것이라며, 2008년과 2020년의 시장 폭락 당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한 감산 실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에 비해 미국과 각을 세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 왔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UAE는 또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등 지역의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도 개선하려는 노력에 사우디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는 외국 회사들을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사막 한가운데 새로 건설중인 도시 '네옴'에 유치해, 장기적으로는 중동 지역의 국제금융허브 지위를 UAE의 두바이로부터 빼앗아 오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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