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 빈 튀니지…보조금 체불에 뿔난 빵가게 업주들 파업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아랍의 봄' 혁명의 발원지인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제빵사들이 파업에 나섰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심화시킨 경제 위기 속에 정부가 장기간 보조금을 체불한 데 따른 반발이다.
20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튀니지 내 빵집 수천 곳이 파업에 돌입했다.
제과점 업주 조합에 따르면 파업에 참여한 빵집은 3천200여 곳으로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빵을 제조하는 전체 빵집의 95%에 해당한다.
이들은 재정 위기에 직면한 정부가 지난 14개월간 지급하지 않은 약 2억5천만 디나르(약 1천118억원)의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빵집 업주들은 수도 튀니스에 있는 튀니지 재계연맹(UTICA) 본부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동북부 나불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나지브 무하마디는 "우리 돈으로 빵을 만든 지가 1년이 넘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파업 첫날 저녁 정부가 체불한 보조금 일부를 지급하기로 합의하면서 이날 파업은 일단락됐지만, 정부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보조금 체불 항의 시위는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튀니지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다.
민중봉기로 독재자인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튀니지는 중동·북아프리카 아랍권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진전 속에서도 심각한 경제난과 극심한 정치적 갈등은 여전했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국민의 불만은 계속 쌓여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 재정난이 심화하면서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생활필수품 수급이 극도로 불안해졌고 물가는 치솟았다.
최근에는 연료 공급업자들이 신용거래 대신 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연료 공급을 지연시켜, 연료가 바닥난 주유소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서는 상황도 벌어졌다.
생필품에 대한 보조금 문제는 튀니지에서 아주 민감한 정치적 이슈다. 지난 1983년에는 하브비 브루기바 대통령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단행한 빵값 인상이 폭동으로 이어져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후 브루기바 정부는 3년 만에 쿠데타로 무너졌다.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독단적인 통치에 불만을 품었던 야당 연합체인 '전국 구원 전선'은 경제위기 상황을 틈타 최근 튀니스에서 대통령 퇴진 시위를 벌이는 등 정치적 불안도 심화하고 있다.
재정난에 고전해온 튀니지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IMF는 지난 15일 튀니지에 19억 달러(약 2조7천400억 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튀니지에 대한 구제금융은 12월에 열리는 IMF 이사회 승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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