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두 개 낳아 작은 첫 알 품지도 않고 내치는 펭귄의 선택
멸종위기 '볏왕관펭귄' 기이한 번식 생태 20여년만에 규명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멸종위기에 처한 '볏왕관펭귄'(erect-crested penguin)은 번식기에 크기가 확연히 다른 두 개의 알을 낳고 먼저 낳은 작은 알은 둥지 밖으로 밀어내거나 깨버리는 기이한 습성을 갖고있다.
지난 1998년 처음으로 이런 사실이 밝혀졌는데, '장남'격인 첫 알을 포기하는 미스터리가 20여년만에 규명됐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의 로이드 데이비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볏왕관펭귄의 야생 관찰자료를 토대로 첫 알을 거부하는 독특한 부화 습성을 분석한 결과를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PLOS)이 발행하는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했다.
PLOS에 따르면 볏왕관펭귄은 지난 50년간 개체 수가 급감하며 멸종위기에 처해있지만 뉴질랜드 남동부 바다의 오지인 '안티퍼디즈'섬과 '바운티'섬에서만 번식해 펭귄 종 중에서는 생태 연구가 가장 덜 돼있다.
과학과 자연을 주제로 한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해 온 데이비스 교수가 20여년 전 이 섬들을 방문해 볏왕관펭귄의 구애와 알 낳는 방식을 처음 관측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지만 이후 더 깊은 연구가 진행되지는 못했다.
연구팀은 당시 113개의 둥지를 관찰하며 수집한 자료를 재분석해 볏왕관펭귄이 알 두 개를 다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두 번째로 낳은 큰 알의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 먼저 낳은 알을 포기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연구팀은 학명이 '에두디프테스 스클라테리'(Eudyptes sclateri)인 볏왕관펭귄도 다른 대부분의 조류와 마찬가지로 양육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알을 낳은 뒤 부화 과정에서 줄이는 생태를 보인다고 밝혔다.
볏왕관펭귄은 첫 알을 낳고 닷새 뒤에 확연히 더 큰 두 번째 알을 낳는데, 알 크기에 차이가 있는 조류가 드물 뿐만 아니라 차이가 나도 첫 번째 알이 두 번째 알보다는 더 큰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특히 두 번째 알을 낳기 전이나 낳은 직후에 먼저 낳은 첫 번째 알은 둥지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대개 어미가 둥지 밖으로 밀어내거나 고의로 깨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볏왕관펭귄 부모 중 약 40%는 첫 알을 아예 품지도 않는데, 두 번째 알은 암컷이 중심이 돼 지속해서 품는 것으로 관측됐다.
연구팀은 볏왕관펭귄이 두 개의 알을 낳아 모두 품는 조상의 번식 습성을 갖고 있지만 두 마리 모두 기를 수 있는 충분한 먹이가 없어 먼저 낳은 작은 알을 희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볏왕관펭귄이 낳는 첫 알은 번식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돼 번식지에 도착한 뒤 안정적 상황에서 형성되는 두 번째 알보다 영양상태가 좋지않아 크기가 작은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섬의 펭귄 서식지에 진흙 사태가 일어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볏왕관펭귄에 대한 보존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볏왕관펭귄이 이렇게 흥미로운 종이고, 멸종위기에 처해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시기에 거의 사반세기 전에 수집된 것이 가장 좋은 자료일 만큼 덜 알려져 있다는 역설을 조명해주는 연구 결과"라면서 "더 많은 연구와 보호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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