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 극우 집권한 이탈리아서 아프리카계 하원의원 탄생
코트디부아르 출신 수마호로 "야당 정치인으로 목소리 내겠다"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지난달 25일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아부바카르 수마호로(42)는 13일(현지시간) 개원하는 국회에서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원의원 400명 중 유일한 흑인이기 때문이다. 역대 상·하원을 통틀어도 이탈리아에서 흑인 국회의원이 나온 것은 한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특히 반이민·반난민 정책을 기치로 내건 극우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터라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인 수마호로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인 수마호로는 12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서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내가 하려고 하는 한 가지는 나처럼 길거리에 내버려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어떤 여권을 소지하고 있든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10대 시절 구두닦이를 하며 이탈리아를 동경했던 그는 19살 때인 1999년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은 금세 깨졌고, 그는 이민 생활의 가혹한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노숙했던 경험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나는 이것이 이민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결정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수마호로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나폴리대에 입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는 같은 이민자로서 이민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가가 됐고, 특히 이민 노동자들의 착취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2019년에는 '반란 속의 인류'라는 책을 출간했다.
현재 이탈리아 시민권자인 수마호로는 이번 총선에서 녹색 좌파당 소속으로 하원 의석을 얻었다. 이제 제도권 내에서 이민자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탈리아형제들(Fdl)의 조르자 멜로니 대표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 해상 봉쇄를 제안하고, 아프리카 이주민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하며 반이민 정서를 자극했다.
수마호로는 이에 대해 극우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이민자 문제를 정치화했다고 비판한 뒤 하원의원으로서 이민자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은 우리 사회에 점점 더 큰 절망감을 조성할 것"이라며 "부의 공평한 분배만이 사회적 긴장을 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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