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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소리듣던 클라우저, 노벨상 수상에 "살아있어 기뻐"(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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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소리듣던 클라우저, 노벨상 수상에 "살아있어 기뻐"(종합)
고교 시절 비디오 게임 만든 전자광에서 물리학도 변신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4일(현지시간) 선정된 존 F. 클라우저는 한때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로부터 경멸받던 학자였다.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 최초의 컴퓨터 구동 비디오 게임을 만든 '전자광(狂)'이었던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선택하며 물리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1960년대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존 벨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진 그는 두 입자가 하나처럼 행동하고 심지어 먼 거리에서도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얽힘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에 대해 2018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읽은 가장 놀라운 논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실험적 증거는 어디 있는지 계속 궁금해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클라우저는 벨의 아이디어를 실험실에서 테스트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최고의 물리학자들로부터 경멸을 받았다.
그는 "모두 내가 미쳤다고 했다. 내 경력을 망칠 것이라고 했고, 모든 이들은 이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나는 도전적인 실험물리학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내 스튜어트 제이 프리드먼, 마이클 혼 등과 함께 1970년대에 일련의 실험을 고안하고 실행해 '벨 부등식 위배'를 최초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AP 통신은 레이저를 칼슘 원자에 쏘여 얽힌 광자를 방출하고 그 특성을 측정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상상조차 무시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하드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클라우저는 1969년 대학원생 때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를 시작으로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1996년까지 근무했다.
그는 2011년 노벨상 후보로 처음 지명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클라우저는 "나는 그것을 기다리며 단지 내 삶을 계속하려고 노력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날 노벨 물리학상 3명의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으로 거명된 뒤 "매우 행복하다"면서 "1969년에 이 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여전히 살아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여든 살로, 다른 두 명의 공동 수상자보다 많다. 양자정보과학 연구를 시작한 지 53년만에 노벨상을 받은 셈이다.
클라우저는 자신의 초기 작업이 훨씬 더 큰 실험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봐왔다고 말했다.
양자 물리학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인 중국의 '모쯔'(墨子·Micius) 위성이 그의 연구 결과에 따라 부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모쯔' 위성은 중국이 2016년 발사한 세계 최초 양자위성통신이다.
그는 "위성과 지상기지국 간 배치는 내가 원래 했던 실험과 거의 같다"며 다만, "내 것은 약 30피트였고, 그들이 한 것은 수천 킬로미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자기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농담하면서도 그것이 묘사하는 상호작용은 거의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양자역학을 연구하는데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진 않았지만, 즐거운 인생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의 수상에 대한 동료들의 반응을 묻자, 클라우저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제 그들은 모두 죽고 없지"라고 웃었다.
taejong7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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