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화 약세, 여왕 서거와 함께 영국 국력 쇠퇴의 상징"
NYT 분석 "英 소프트파워 시대의 종말…브렉시트·감세안 등 자충수"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긴급 대규모 국채 매입에 나설 만큼 급락한 영국 파운드화의 약세는 영국 국력의 쇠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장중 한때 '1파운드=1달러'의 등가에 근접한 1.03달러까지 파운드 가치가 떨어진 것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가 상징하는 만큼이나 영국 역사의 한 장(章)을 마감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이언 골딘 옥스퍼드대 교수는 "여왕의 서거는 많은 사람에게 영국의 소프트파워가 드높았던 한 시대를 끝맺은 일"이라며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진 파운드화의 종말은 여러 차원에서 더 광범위한 쇠퇴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최근 파운드화 약세의 직접적인 원인은 리즈 트러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정책이다.
BOE가 지난 28일 대규모 국채 매입을 발표해 시장에 개입하면서 이런 감세안이 영국 금융 안정성에 중대한 위험요인이 될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위기감은 증폭됐다. BOE의 이런 조치는 앞서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수개월간 추진해온 정책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NYT는 파운드화 약세가 리즈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장관의 경제정책에 금융시장이 보내는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2016년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가속한 영국의 경제적·정치적 쇠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골딘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인도에 세계 5위 경제 국가 자리를 내준 영국이 세계 10위에서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여러 측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영국 경제가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에스워 프라사드 코넬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의 파운드화 약세가 영국의 지위에 새로운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브렉시트, 영국 정부의 재정정책 등 일련의 '자충수'가 파운드화의 급락을 부추기면서 세계 금융 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도 오랜 세월 영국 통치자들과 정부는 국가의 경제력과 영향력의 상징으로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방어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으나 영국 파운드화는 부침을 겪었다.
한 예로 1960년대 해럴드 윌슨 정부는 2.80달러의 높은 고정환율이 영국 경제를 위협하는데도 파운드화 평가 절하를 거부했고, 1967년이 돼서야 2.40달러로 절하했다.
코넬대 프라사드 교수는 "여왕 서거와 파운드화 추락이 합동으로 한 시대의 종말을 단호히 보여주는 듯하다"며 "이 두 가지 사건은 영국 경제와 파운드화의 위상이 크게 낮아지는 긴 역사적 여정에서 표석으로 여겨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화를 되살리는 방법은 현재로서 미지수이며 트러스 정부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언 셰퍼드슨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운드화 급락은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 정책적 선택의 결과"라며 "이것이 암울한 새 시대가 될지, 막간의 불운에 그칠지는 그들(영국 정부)이 노선을 바꾸거나 다음 선거에서 축출될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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