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부터 장례식까지 생중계…'TV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이젠 남편 옆에서 영면에 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생중계된 대관식과 장례식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헤어졌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여왕이 1953년 6월 2일 대관식에서 왕관을 쓰는 모습은 브라운관 TV를 통해 전파를 탔고, 이날 여왕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순간도 TV를 비롯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실시간 송출됐다.
두 행사 모두 영국 군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됐다.
대관식은 아날로그 TV 시대가 막 열렸던 때로 영국인 상당수가 역사적인 장면을 보기 위해 TV를 구매했고, 옷을 정중하게 갖춰입고 시청하기까지 했다. 한때 상류층만 누렸던 행사를 대중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TV를 통해 왕실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간 철통같이 유지됐던 왕실의 신비스러움은 깨지게 됐지만 왕실의 이미지가 널리 퍼지면서 대영제국이 사라진 후에도 여왕의 영향력은 유지되고 확장됐다.
영국 왕실 구성원은 여러 스캔들과 결혼식 등을 거치며 전세계 '셀럽'으로 거듭났고, 영국 왕실을 다룬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더 크라운'도 인기를 얻었다.
이날 장례식은 영국 왕실의 위용을 보여주는 초대형 행사로 현장에도 인파가 엄청났지만 TV를 통해 지켜보는 이가 더 많았다.
영국에서는 여러 도시 광장에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고, 교회와 영화관 등에서 BBC 생중계 보도를 내보냈다. TV가 없었던 술집과 레스토랑은 이번 장례식을 위해 새로 마련했다.
WP는 여러 전문가를 인용해 장례식이 TV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한 단일 행사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방송사들은 이날 중간 광고 없이 생중계로 장례식 현장을 전하며 경건한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장례행렬을 송출하면서 별다른 해설이 없는 순간이 이어졌고 수시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BBC 월드뉴스는 원래 있던 하단의 자막을 빼버렸고, 여왕의 관이 포차에 실리는 순간 등 중요한 장면을 그대로 살리고자 해설자는 거의 속삭이다시피 말을 했다.
해외에서도 생중계 열기가 뜨거웠다.
일본 공영 NHK는 동시 자막을 달고 장례식을 생중계했고, 옛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선 수백명이 휴대전화와 태블릿으로 장례식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여왕이 재임한 70년은 또 한편으로는 TV의 흥망성쇠를 보여준 시기와도 맞물린다. 이날 시청자들은 전통적인 TV 이외에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 여러 곳에서 장례식을 지켜봤다.
여왕과 TV는 모두를 하나로 묶어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NYT는 전했다.
모든 영국인이 군주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왕은 영국을 대표하는 불변의 지주 같은 존재였고 TV는 서로 다른 시민도 똑같은 장면을 동시에 봤다는 경험만으로 하나로 뭉치게 했다는 것이다.
미셸 도넬란 영국 문화장관은 20일 일반인 참배 기간동안 약 25만명이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의 관에 참배했다며 정확한 통계는 추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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