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에 실질임금 감소…"사 먹던 커피도 끊었다"
고환율도 겹쳐 경제 주름살 깊어져…차가운 국민 체감경기
가계 씀씀이에 '찬바람'…복합위기로 소비 부진 심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초반의 맞벌이 부부 김모 씨는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하던 가족 외식을 한 번으로 줄이고 배달 음식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
김씨는 "물가가 너무 뛰어 고깃집에 가면 최소 7만~8만원 나오는 외식비가 크게 부담된다"며 "회사에 출근해서는 혼자서는 한 잔에 5천원 안팎 하는 커피를 사 먹는 것도 끊었다"고 말했다.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서는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김 씨는 "MZ세대와 같은 무지출 챌린지 수준은 아니더라도 고물가로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상황인데다가 앞으로 경기도 더 안 좋아진다고 해서 지출을 최대한 줄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우리 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면서 가계의 씀씀이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물가는 뛰고 경기는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마저 가시화하면 가계는 지갑을 닫고 이는 다시 경기 냉각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 뛰는 물가에 실질소득↓…추석 이후 라면값·공공요금 인상 예고
국민의 살림살이는 이미 팍팍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 분기보다 1.3% 감소했다. 실질 GNI는 일정 기간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임금, 이자 등 각종 소득을 합한 것으로, 실제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물가가 계속 뛰면서 이를 고려한 근로자의 지갑도 얇아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전체 근로자의 명목임금은 평균 366만3천원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4.9%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338만5천원으로 1.1% 감소했다.
실질임금은 4월(-2.0%), 5월(-0.3%)에 이어 석 달째 줄었다. 3개월 연속 감소는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는 올해 6월에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6.0% 올랐다. 7월에는 6.3%로 상승 폭이 커지고 8월에는 5.7%로 둔화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외식하기 겁난다는 말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관련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소비자원의 가격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8월 서울 지역 삼겹살 가격(200g)은 평균 1만8천364원으로 1년 사이에 8.7% 올랐다. 1인분 기준 냉면은 1만500원으로 9.6%, 자장면은 6천300원으로 15.3% 뛰었다.
추석 이후에는 라면 가격 인상도 예고돼 있다. 농심은 오는 15일부터 주요 라면 가격을 평균 11.3%, 팔도는 내달 1일부터 12개 브랜드 라면 제품의 가격을 평균 9.8% 올린다. 10월에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동반 인상이 예상된다.
◇ 대내외 경제 환경 악화…"소비 부진 심화 가능성 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미국의 통화 긴축 정책 강화, 중국의 경제 성장세 둔화 등으로 세계 경제의 침체 우려가 커지고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에 들면서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0.3% 줄어 1995년 통계청의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5개월 연속 감소했다.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 탓에 산업생산(-0.1%)과 투자(-3.2%)도 함께 줄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소매판매가 승용차, 가구 등 내구재를 중심으로 부진했지만 대면 업종과 관련이 높은 준내구재와 대면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갔다"고 평가했다.
전반적인 소비심리는 여전히 차가운 모습이다.
한은이 조사한 8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8로 전달보다 2.8포인트 상승했지만 기준치 100을 크게 밑돌았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한은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경제 분야 뉴스에 나타난 경제 심리를 지수화한 뉴스심리지수(NSI·기준치 100)는 8월 99.1을 기록했다.
향후 경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인 지난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현재 대내외 상황을 종합해보면 복합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격화하는 것도 악재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에 이어 가스에 대해서도 가격 상한제 도입을 검토하고, 러시아는 이에 동참하는 국가에 에너지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8월 초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재개됐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약세로 돌아선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우리나라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입 비용 증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은 가계 부담을 한층 키울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전환되면서 보복 소비를 기대했지만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가계의 실질 구매력 감소가 우려된다"며 "고금리·고물가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소비 부진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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