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자포리자 원전 핵무기처럼 쓰고 있어"
자칫 '더티밤'…미 "보호막·위협수단 될지 예상못해"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포리자 원전을 점거한 것은 단순히 원전을 방패로 쓰는 것을 넘어 무기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정보 당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 자포리자에 진격해 원전을 점거하고서 병력을 단지 내에 배치해놓고 원전 단지를 방패삼아 우크라이나군과 대치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문의 포탄이 연이어 원전 단지 안으로 떨어지면서 원자력 사고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양측이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미국 정부도 누가 포격을 했는지 명확하게 가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NYT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포리자 원전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이용하면서 원전을 핵무기처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포리자 원전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더티 밤'(dirty bombs)이 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은 물론 서방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티 밤은 재래식 폭탄에 방사성 물질을 채운 일종의 방사능 무기를 말한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 개시 직후 군에 핵 대응 체계 강화를 지시하거나 TV 연설 등을 하는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핵 긴장을 조성하는 행동을 해 왔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담당 조정관은 "원전이 전쟁 중 전투에 휘말리는 상황은 예전부터 많이 생각한 것이지만, 이처럼 원전이 점령군의 보호막처럼 쓰이거나 위협의 수단이 되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원전의 안전을 점검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접근 중이지만 NYT는 이들의 역량이나 활동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원래 IAEA의 기본 활동은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이 핵무기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감시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상황처럼 원전이 외부 공격이나 인위적인 조작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는지 살펴보거나 대비책을 세우는 것은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 일각에선 IAEA가 원전 주변에 비무장 지역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이는 IAEA의 권한도 아니라고 매체는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원전 사고를 막기 위해 자포리자 원전 가동을 중단하길 원하지만, 이 원전은 전쟁 전 6개의 원자로가 풀 가동될 때 우크라이나 전력 공급의 5분의 1을 담당했기에 우크라이나엔 적잖은 부담이 된다고 NYT는 전했다.
자포리자 원전 이전에도 국가간 분쟁 과정에서 원전이 위협을 받은 사례는 있었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하고 2007년엔 시리아에서 북한이 짓던 원전을 폭격했다. 하지만 당시 이들 원전은 건설 중이었기에 핵사고 위험은 전혀 없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10여년 전에는 이란 원전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격받은 이란 원전의 원심분리기 등 핵심시설은 지하 깊숙이 있었기에 방사성 물질 노출 위험은 제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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