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상 전한 英사진작가 팀 페이지 별세
20살부터 약 4년간 베트남전 기록…수차례 죽을 고비 넘겨
동료 사진작가 추모 작품에 매진하기도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베트남 전쟁에서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꿋꿋이 참상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국 사진작가 팀 페이지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페이지는 이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간 질환과 췌장암이었다고 그의 지인이 밝혔다.
페이지는 1965년 20살 당시 베트남에 도착해 이후 약 4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 참상을 기록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최전방에 나가는가 하면 헬기를 타고 집을 잃은 베트남인과 들것에 실린 전사자 등 참혹한 현장을 담았다.
특히 페이지는 촬영 과정에서 4차례나 생사가 오가는 위기를 감수하면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탄 미국 초계정이 공격을 당하면서 몸에서 300개가 넘는 파편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회복을 위해 베트남을 떠났다가 상처가 낫자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을 보도한 뒤 이듬해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1969년에는 부상당한 미군을 구하기 위해 같이 따라나선 병사가 앞에서 지뢰를 밟으면서 5㎝짜리 파편이 페이지 오른쪽 눈 위를 뚫고 뇌까지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도 그는 황급히 카메라 렌즈를 바꿔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야 헬기 안에서 쓰러졌다. 세 차례 심정지가 왔고 그가 몇 분 동안 살 수 있을지 얘기하는 의료진 말도 들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야전병원에 도착해 플라스틱을 두개골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지뢰를 밟았던 병사는 두 다리를 잃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얻어낸 그의 사진은 미국 사진잡지 '라이프'와 미 주간지 '타임', 프랑스 '파리마치' 등 매체에 실려 세상에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페이지는 2013년 한 매체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진이 반전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전쟁 사진은 반전(反戰) 사진"이라며 "내 사진이 베트남 전쟁을 멈춘 건 아니지만 여론을 흔드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모든 작은 마을에서 사람이 관에 실린 채로 돌아오니까 (사진이) 미국인 심리에 서서히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강제로 전쟁을 끝내게 했거나 끝내는 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페이지는 뇌에 플라스틱을 삽입한 사고를 당한 이후에는 미국으로 가서 회복에 전념하다가 1979년 모국인 영국에 머물다 1980년대 초반 약 10년 만에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그는 이후 동남아에서 목숨을 잃은 언론인을 추모하고자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1991년 21년 전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현지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에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동료 사진작가 숀 플린과 다나 스톤의 실종 과정을 추적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고, 1997년에는 베트남전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AP통신의 호르스트 파스와 손잡고 1945∼1975년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사망한 사진작가 135명의 작품을 담은 도서 '레퀴엠'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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