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문까지…옛 친미 왕국 사우디, '탈미국' 광폭 행보
'아시아로의 회귀' 미국 공백 노린 중국, 중동서 영향력 넓혀
시 주석 위한 환영연회 준비 중…"중동은 패권 경쟁 주요 무대"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꼽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거리 두기에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우디 방문 소식까지 알려진 것이다.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이 성사되면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2020년 1월 미얀마를 방문한 이후 2년 7개월 만의 첫 해외 방문이 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의 외교적 성과가 미미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황에서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급속도로 악화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뒤 첫 해외 방문국으로 사우디를 선택했을 만큼 양국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논란이 된 사안마다 사우디 편에 서 왔다.
그는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못 본 척하고,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군에 대한 미군의 지원을 중단하라는 상·하원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우디는 대규모 무기 구매, 대이란 압박,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 등으로 화답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아래 중동에서 '철수'를 진행했다.
지난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이라크에서도 전투 임무를 종료했다. 또 사우디에 설치했던 첨단 미사일 요격 체계를 철수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이라는 대명제를 근거로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왕세자를 '왕따'로 만들겠다며 앞장서 압박했다.
미국의 '공백'을 비집고 영향력을 확대한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사우디에 다양하고 수익성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바이든 행정부에 서운함을 느낀 사우디 정부가 미국의 공백을 메울 새 안보·경제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원유 일부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이는 국제 원유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흔드는 일이다.
지난 3월 사우디는 일찌감치 시 주석에게 수도 리야드를 공식적으로 방문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 관리를 인용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시 주석은 막역한 친구이며, 단지 원유와 무기를 거래하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1일(현지시간)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 계획을 보도하면서 성대한 환영 연회가 준비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환대 분위기는 지난 6월 사우디를 찾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대접과 대조를 이룬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사우디를 방문해 '중동으로의 복귀'를 천명했지만, 걸프국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은 분위기다.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모하메드 알야흐야 선임 연구원은 가디언에 "과거 중국은 중동에 대해 상업적인 접근만 했지만, 지금은 전략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며 "지정학적 관점에서 중동은 중국에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알야흐야 연구원은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으로 국제 정세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인들은 산유국이 밀집한 중동을 패권 경쟁의 주요 무대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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