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웃사이더라고?" 우크라 교민, 타향서 존재감 부각
모국 전쟁 계기로 '뿌리찾기' 확산…저항 의식도 조명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각지에 흩어져 사는 우크라이나 교민이 모국에서 터진 전쟁 이후 더 자부심을 가지게 됐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뒤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서유럽 중에서도 예전부터 우크라이나 교민이 가장 많이 살던 이탈리아에서 우크라이나인 상당수가 자신의 핏줄에 대한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으로 한껏 똘똘 뭉치게 됐다.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은 원래부터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우크라이나 교민에게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고 이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고, 그런 경향이 덜했던 이들에겐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게 NYT 진단이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정신을 떠받치는 애국심이 타지 교민 사회까지 퍼져 자부심과 연대 의식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로나에서 27년간 살아온 마리나 소리나는 자신이 만든 우크라이나인 모임이 전쟁 후 회원수가 3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부모 아래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18세 안토니나 베키시는 "이 상황에서 배운 게 있다면 내 뿌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라며 "불행히도 이걸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어를 쓰는 그는 예전에는 가까운 친구에게나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을 알리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태생을 밝히기 꺼렸다고 털어놨다.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하면 왠지 다르게 평가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는 자신의 출신을 떳떳이 밝히며 소셜미디어에서 반전 운동을 펴는 등 조국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외부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역사, 정치, 문화, 대중음악 등이 전세계적 관심을 받게 됐고, 이탈리아 사람들도 먼저 우크라이나 독립 영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우크라이나 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장식된 식당을 가는 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의 세레나 파레흐 철학 교수는 우크라이나인은 유럽에서 흑인 이주민이 받는 차별에선 비껴갔지만, 일자리를 구하러 온 이민자가 맞닥뜨린 고정관념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련이 붕괴한 후 1990년대 후반 우크라이나인은 실업과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탈리아가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한 이후 이주민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쟁 이전에 이탈리아에 사는 우크라이나인은 약 23만명이었고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상당수가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피란민 15만명이 이탈리아로 모여들었다.
이탈리아에서 체조클럽을 운영하며 조국 모금활동을 돕는 올레나 사모이렌코는 "이제 우크라이나인이라고 하면 꼭 '간병인'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며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파레흐 교수는 "전세계 많은 사람이 고국에 남아 싸우는 우크라이나인 용기에 감탄하기 시작했고 이는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인식을 유럽을 찾아오는 외부인에서 '우리 중 하나'로 바꿨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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