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총리 "원주민 대변 헌법기관 설치…임기 중 개헌 국민투표"
현행 헌법, 영국이 주인 없는 땅 차지했다며 원주민 인정 안 해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임기 내 호주 원주민을 지원하고 이들을 대변하는 단체를 헌법 기관으로 설치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30일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앨버니지 총리는 이날 북부 노던 준주 안헴랜드에서 열린 원주민 전통 문화제 '가르마 축제'에 참석해 이같이 밝히면서 "임기 내 성공적인 국민 투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며 집권한 앨버니지 총리의 첫 임기는 2025년까지다.
앨버니지 총리는 개헌을 통해 헌법에 포함할 초안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초안에는 '애버리지니(Aborigine·호주 원주민)와 토러스 해협 제도 원주민들의 목소리'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이들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 기구가 의회와 행정부에 대변할 수 있으며, 국회는 이 기구의 기능과 권한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애버리지니는 호주 대륙의 원주민이고 토러스 해협 제도 주민은 호주 북부와 뉴기니섬 사이에 있는 섬들에 사는 주민이다.
이들은 영국이 호주를 식민지로 만들기 전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호주 헌법은 영국이 주인 없는 땅에 나라를 세웠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헌법에서 호주 원주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애버리지니와 토러스 해협 제도 원주민을 헌법에 명기해 영국이 호주를 세우기 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상 인정하게 된다.
상징적 의미 외에도 원주민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의회에 직접 전달돼 각종 지원 정책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구 약 2천500만명인 호주에서 원주민은 약 3%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백인보다 기대 수명이 짧고 실업률은 4배에 달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앨버니지 총리는 총리에 오르기 전부터 헌법 개정을 통해 호주 원주민을 인정하고 국가 체제도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호주는 여전히 영국 여왕을 명목상 국가 원수로 삼고 있으며 여왕을 대신하는 총독이 총리를 임명하는 형식이다.
전문가들은 앨버니지 총리가 우선 호주 원주민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고 이를 동력으로 공화국으로의 전환에도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에서 원주민 인정과 공화국으로의 전환을 위한 개헌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에는 이 같은 내용으로 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민 투표에서 부결됐다. 호주에서 개헌하려면 전체 투표에서 50%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며 동시에 호주 6개 주 중 4개 주 이상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많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약 55%가 개헌안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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