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트스트림1 재가동 열흘 기다렸는데 '찔끔'…애타는 독일
"유럽 분열시키는 푸틴 전략"…공급 불확실하고 공급량도 40%로
"과거 친러시아 정책 고수 독일에 다른 유럽국가 냉담"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독일로 보내는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21일(현지시간) 열흘 만에 재가동했지만 벼랑 끝에 몰린 독일의 에너지 위기 상황이 해소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에는 수송량이 턱없이 모자란데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응하는 유럽의 단일대오도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열흘간 진행한 연례 정기점검을 마치고 이날부터 가스관 가동을 재개했다.
가스프롬은 지난달 14일 가스 공급량을 수송 용량의 40% 수준으로 줄였다. 점검 중엔 재가동 여부를 두고 유럽의 애를 태웠다. 그러더니 재가동 후에도 여러 이유를 들어 줄어든 이 공급량을 유지하고 있다.
가스프롬 측은 도일 지멘스에 수리를 맡긴 터빈을 아직 되찾지 못해 공급량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스프롬이 늘 예비용 터빈을 갖추고 있다는 가스프롬 직원들의 증언을 보도했다.
줄어든 가스 공급량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유럽을 향한 명백한 의도가 작용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자국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를 풀기 위해 가스 공급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방식으로 유럽을 불안케 해 분열시켜 압박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55%에 달하던 독일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에 대처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독일은 이미 지난달부터 가스 공급 조기경보 단계를 전체 3단계 중 2단계로 올렸다. 여기엔 화력발전소 연료를 가스에서 석탄으로 변경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독일의 가스 비축량을 늘리겠다며 가장 질 낮은 석탄, 갈탄을 연료로 쓰는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개인용 수영장 온수를 가스로 데우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 에너지 배급제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독일의 이런 노력에도 일부 유럽연합 회원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독일 스스로 쌓은 '업보' 탓으로 보인다.
독일은 주변 국가들의 오랜 경고에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지 않았다. 심지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유엔에서 "당장 방향을 수정하지 않으면 러시아산 에너지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 독일에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독일 대표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20일 EU 회원국이 가스 소비량을 15% 감축하자는 긴급 제안을 내놨다. 함께 소비량을 줄여 러시아의 '가스 무기' 위력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독일인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호소에 다른 나라들이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NYT는 유럽 국가 상당수가 독일을 향해 에너지 가격 급등의 고통은 자국 내에서 알아서 견뎌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유로존 금융위기 당시에는 스페인, 그리스의 지원 호소에 독일이 소극적으로 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때 외면당했던 바로 그 나라들이 최근 '뒤끝'을 보이고 있다. 이미 러시아산 의존도를 크게 줄인 터라 더 줄이기는 쉽지 않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테레사 리베라 스페인 에너지장관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가스 절약을 독려하긴 하겠지만 공급을 차단하진 않겠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리스 정부도 EU 집행위의 사용량 감축 계획을 공식 반대했다. 그리스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도 40%로 비교적 높지만 러시아가 아직 공급량을 줄이지 않은 상태다.
야니스 클루게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바라는 게 바로 이거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음에 언젠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전달할 일이 생긴다면,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이러면 우리집 가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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