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대에 쫓겨난 스리랑카 대통령, 군용기로 몰디브 도피(종합)
13일 공식 사임할 듯…20일 의회서 차기 대통령 선출
(콜롬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민중 시위에 사임 의사를 밝혔던 고타바야 라자팍사(73) 스리랑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오전 군용기를 타고 스리랑카를 떠났다.
고타바야 대통령과 영부인, 경호원 등이 스리랑카 공군기 안토노프-32에 탑승해 스리랑카를 떠나 몰디브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로 이동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데일리 미러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국가 부도가 발생한 스리랑카에선 지난 9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시위대는 고타바야 대통령과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총리관저 등을 점거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로 몰려들자 고타바야 대통령은 급히 수도 콜롬보의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 인근 공군기지로 피신했고,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에게 13일 공식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어 민영 항공기를 통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이동하려 했지만, 공항 내 이민국 직원들의 저지로 탈출에 실패했다.
결국 그는 이날 군용기를 이용해 스리랑카를 탈출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정계에서는 그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도 공식 사임일을 13일로 잡은 것은 헌법상 면책특권을 갖고 있을 때 해외 탈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고타바야 대통령과 함께 정계를 사실상 장악했던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등 라자팍사 가문의 주요 인물들도 모처에 대피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시위대는 아직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점령을 유지한 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위대는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며 공식 사임할 때까지 점령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고타바야 대통령과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이날 사퇴하면 스리랑카 헌법에 따라 아베이와르데나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국회는 오는 20일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고타바야 대통령 등 라자팍사 가문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스리랑카 정계를 장악한 채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통치를 주도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진행된 정부군과 타밀족 반군 간 내전을 2009년 종식했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군이 민간인 4만5천여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이를 비롯한 여러 인권 탄압 사건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결국 2015년 선거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고타바야 대통령의 형 마힌다가 패하면서 이들의 통치도 중단됐다.
하지만 2019년 4월 콜롬보 시내 성당과 호텔 등 전국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폭탄이 터지는 '부활절 테러'가 발생하면서 혼란이 벌어졌고, 다수 불교계 싱할라족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2019년 11월 대선에서 고타바야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했다.
정권을 다시 잡은 고타바야 대통령은 형인 마힌다를 총리에 임명하는 등 다시 '가족 통치' 체제를 구축했지만, 코로나19로 관광 산업이 무너지고 각종 정책이 실패하면서 경제가 추락, 지난 5월 국가 부도를 선포했다.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가 격화했고 결국 지난 9일 사임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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