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소녀상 앞 철거촉구 극우시위 막으려면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26∼30일 열린 한국 극우단체 소속 4명의 시위는 베를린 시민사회단체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 위안부사기청산연대 소속 4명은 베를린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위안부 동상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위안부 소녀상을 자진 철거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 장면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소녀상 맞은 편에서는 독일, 재독 시민사회단체 소속 활동가와 지역주민,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이들이 소녀상을 훼손하지 않는지 감시했다. 지난 26일에는 이들의 25배에 해당하는 100여명의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집에 가", "공부 더 해"를 외치며 대항집회를 열기도 했다.
자명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극우성향 시위대의 흔한 행태다.
독일에서도 극우 성향의 시위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부정하면서 정부의 방역수칙을 철회하라고 하거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옹호한다.
다만, 독일에서는 과거사, 특히 나치 시대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유대인 대학살을 상기시키거나 피해자를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서는 집회나 시위도 할 수 없다.
독일 형법 130조(국민선동죄) 3항에 따르면 나치 지배하에서 범해진 유대인 대학살의 참혹성을 축소하거나, 부정하거나 정당한 것이었다고 공공연히 또는 집회에서 주장하는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금고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 조항은 1994년 독일 대법원이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한 독일 극우 정당 대표에 대해 국민선동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정한 데 따른 반발 속에 탄생했다.
독일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스캔들"이라고 칭하면서, 대법원이 유대인 대학살 부정을 처벌하지 않고 방치한 데 대한 비난여론이 널리 확산했다.
이후 독일 헌법재판소가 유대인 대학살 부정은 사상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하면서 해당 조항 신설이 가속했다.
헌재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논박하거나 이론을 제기하는 것은 허위로 입증된 사실을 재론하는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회 등에서 이런 허위사실 주장과 연계된 구호를 계획하는 경우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이같이 나치 시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끝없는 반성과 사죄, 후대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부정은 사상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부정은 공공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사회적 공감대 하에서다.
독일 베를린에서 집회·시위를 모니터링하는 공동체인 데모티커 활동가 마이크는 "독일에서는 극우가 유대인 대학살 기념비 바로 앞이나 인근에서 집회를 하는 게 금지돼 있다"면서 "주옥순 등 4명처럼 피해자들의 명예를 더럽히고 상처입히는 것은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도 사회적으로 어떤 측면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역사 부정과 이에 대한 대처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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