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원 뚫린 환율, 커진 S공포…실물·금융 복합위기 심화 우려
환율 상승에 수입 물가↑…소비자물가 상승 폭 키워
물가 상승에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 전망…가계부채 부실화 위험 커져
위기 경고 잇따라…금감원장 "미증유 퍼펙트스톰 밀려올수 있어"
(세종=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23일 원/달러 환율이 12년 11개월여 만에 장중 1,300원을 돌파하면서 우리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불황 속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고환율이 가뜩이나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물가를 부채질하고 이는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심상치 않은 위기를 걱정하는 경제·금융 정책 당국 수장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 환율 상승에 수입액도 증가…물가 상승세 '부채질'
환율 상승은 수입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원화값이 떨어져 똑같은 수량을 사더라도 돈을 더 줘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5월 수입물가지수(2015년 수준 100)는 원화 기준으로 153.74로 작년 같은 달보다 36.3% 상승했다.
그러나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137.88, 달러 기준으로는 136.80으로 각각 1년 전보다 23.1%, 20.5% 상승해 오름폭이 더 작았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수입 물가의 오름폭을 더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전월 대비로 보면 수입 물가는 원화 기준 3.6%,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0.9% 각각 올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 올라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 물가 상승에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 전망
물가 상승세의 확대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더 가속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국내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지난달 전망 경로(상승률 연 4.5%)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해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 등 긴축 가속화에 나서는 것도 국내 기준금리의 상단을 높이는 요인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연말까지 남은 네 차례의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이 중 한번은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 수입 증가에 무역적자 폭 확대…경상수지 악화 우려
수입은 증가하는 가운데 수출 증가세는 둔화하면서 무역적자 폭은 확대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수입액(통관기준 잠정치)은 3천393억6천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8% 증가했다.
이 기간 수출은 3천238억9천7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5.4% 증가했다.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웃도는 양상이다.
월별로 보면 지난해 6월 수입 증가율(40.9%)이 수출 증가율(39.7%)을 상회한 이후 수입 증가율은 월간 기준 12개월 연속 수출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
올해 들어 무역수지는 154억6천9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 규모가 집계 이후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올해 경상수지가 지난해보다 증가 폭이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상수지를 450억달러 흑자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흑자 규모(883억달러)보다 대폭 줄어든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 감소는 원화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우리나라 통화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의 통화도 약세여서 환율 상승이 수출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은 것 같다"며 "대신 수입 물가를 올리는 등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 실물 경기 둔화 가능성↑…"복합 위기 국면"
대외 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국내 통화정책의 긴축도 가속화되면, 우리 실물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이미 실물 경제에서는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4월 전(全)산업 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지수,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 설비투자가 전월 대비 감소했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세를 기록한 건 2년 2개월만이다.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두 달 연속 하락했다.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가계·기업에 모두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특히 가뜩이나 규모가 커진 가계 부채의 부실화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전날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금융불안지수(FSI)가 3월(8.9) '주의' 단계(8이상 22미만)에 들어선 뒤 4월(10.4%)과 5월(13.0)에도 같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불안지수 자체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한은은 같은 보고서에 가계대출, 자영업자 대출 등이 충격에 취약해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계 부채 등의 부실은 실물 부분으로 전이돼 소비와 투자를 모두 위축시킬 수 있다.
경제 정책 당국자들도 최근의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긴급 간부회의에서 국내외 금융·외환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복합위기가 시작됐다"고 밝혔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금융·경제 연구기관장들과 만나 "미증유의 퍼펙트스톰이 밀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경제적으로는 심각한 세계 경제 위기를 의미한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현재는 금융 부실과 실물 경기 침체가 같이 올 수 있는 복합위기 국면"이라며 "금리가 높아져 가계부채가 부실화되고 부동산 '버블'도 붕괴하면, 실물 부분에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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