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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증산하라지만…가동 멈추는 미국 정유시설들
"친환경 정책에 정제용량 확대 위한 시설개선 작업 부담"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미국 정부가 정유사에 공급 확대를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내 정유시설은 가동을 멈추거나 용도를 전환하고 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0일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미국에서 정유 공장 5개가 폐쇄돼 국내 원유정제 용량이 5% 감소했다.
이 때문에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석유 생산이 줄어들어 남아 있는 정제시설들이 수요를 감당하는 데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마저 물가상승의 '원흉'으로 정유회사들을 지목하면서 생산량 증대를 압박하고 있지만 정유사들은 가동을 확대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정유시설의 폐쇄가 임박한 상황이라고 WP는 전했다.
미국 석윳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물가 상승에 기름을 붓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엑손모빌을 비롯한 정유사에 직접 서한을 보내 휘발유 등 공급 확대를 요구했지만, 정유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유사들이 현재 고유가로 막대한 이윤을 챙기면서도 증산을 위해 선행돼야 할 값비싼 시설 개선 작업을 주저하고 있는 데다 화석연료에서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정부 정책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이라고 WP는 진단했다.
WP는 1년 전 배럴당 1∼2달러에 불과했던 정제마진이 현재는 18달러까지 뛰었음에도 투자자들은 이 같은 수익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 역시 환경을 중시하는 까닭에 상당수 정유시설이 머지않은 미래에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또한 거대한 정유시설을 건설하거나 시설을 개선하는 것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는 골치 아프고, 비싼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룡 기업마저 재정적인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셰브런의 마이클 워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달 WP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새 정유 공장이 건설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정유공장이 추가로 건설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석유 제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추진되는 나라에서 어떤 회사라도 막대한 돈을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가동 중인 정유공장은 129개로, 이 가운데 가장 최근 문을 대규모 정유시설은 1977년 루이지애나주 개리빌에 건설된 마라톤 오일의 정유공장이다. 이 공장이 가동에 들어간 이래 미국 내 정유공장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고 WP는 밝혔다.
현시점에도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대규모 정유시설 '리온델 바셀'(Lyondell Basell)이 매물로 나와 있지만, 아무도 이를 사려 하지 않는 탓에 하루 정유 용량이 26만4천배럴에 이르는 이 시설은 내년 말까지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전했다.
이 시설의 운영사는 "정유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최선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휴스턴대학의 에너지 전문가인 에드 허스는 "물리적으로 노후화한 이 시설의 재정비 등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는 데에만 3년이 소요될 텐데, 그때까지는 자동차 시장의 20%는 전기차로 채워질 것"이라며 "시설을 정비하는데 막대한 현금을 투자하고도 얼마 못 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일부 공장들은 시설 노후화 등으로 대규모 폭발 사고 등을 직접 겪거나 화재 위험 등에 노출돼 있어 지역사회의 인식마저 좋지 않은 형편이다.
컬럼비아대학 글로벌에너지정책연구소의 제이슨 보도프는 "문제는 현재 존재하는 정유시설들이 최대치로 공장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유업체에 지금보다 더 많은 석유를 정제하도록 요구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동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정유공장 '필레델피아 에너지 솔루션스'의 경우 대규모 폭발사고 등 우여곡절로 점철된 15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전자상거래 등을 위한 친환경·최첨단 캠퍼스로 변모 중이다.
2020년 파산한 이 정유소의 탈바꿈을 이끄는 재개발회사 힐코의 로베르토 페레스 CEO는 "지역사회가 정유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려는 우리의 계획을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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