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인플레 보고] ⑤"서민 먹거리 코샤리값도 2배로"…더 배고픈 중동
이집트, 우크라 전쟁후 식품 2∼3배 폭등…불황에 일자리 급감
이란 테헤란 시민 "분 단위로 물가 올라 생계유지도 어려워져"
(카이로·테헤란=연합뉴스) 김상훈 이승민 특파원 = "모든 재료 가격이 폭등해 어쩔 수 없이 코샤리 가격도 배로 올렸더니 손님이 75%는 줄었어요. 이런 불황은 생전 처음이에요"
중동에서 인구(약 1억명)가 가장 많은 이집트는 전 세계 최대 밀 수입국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전쟁이 난 우크라이나에서 거리는 멀지만 곡물 가격 급등에 직접 타격을 받았다.
이집트 통계청(CAPMAS)에 따르면 이집트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월 13.1%, 5월 13.5%로 두 달째 두 자릿수를 유지한 채 오르고 있다.
중동엔 이집트를 비롯해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빈곤국이 가뜩이나 많은 데다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더 굶주리게 됐다.
카이로 남동부 하이 댐 시장에서 12년째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무함마드 사이드(28)씨는 "안 오른 게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모든 제품 가격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이집트인이 가장 즐겨 먹는 채소인 감자 값은 석 달 만에 ㎏당 2이집트파운드(약 137원)에서 5이집트파운드(약 344원)로 뛰었고, 토마토 가격은 5이집트파운드(약 344원)에서 15이집트파운드(약 1천31원)로 3배가 됐다.
이 시장에서 파는 밀가루와 쌀, 콩 등 곡물 가격도 대략 70∼80% 뛰었다고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식자재 가격은 코샤리(밥, 마카로니, 콩 등 곡물과 채소를 섞어 먹는 이집트 음식), 타메야(병아리콩, 누에콩과 채소를 갈아 반죽한 뒤 튀긴 음식) 등 서민이 즐기는 길거리 음식 가격도 급격하게 밀어 올렸다.
24년째 시장에서 코샤리 가게를 운영하는 야세르 파트히(46) 씨는 "쌀, 토마토, 양파, 파스타는 물론 식용유까지 모든 재료 가격이 폭등했다"며 "6개월 전 7이집트파운드(약 481원)에 팔던 코샤리를 지금은 15이집트파운드(약 1천31원)에 판다"고 말했다.
그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외식도 아예 못한다. 손님 수가 이전의 25%도 되지 않는다.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채소가게 주인 사이드 씨도 "양파와 오이, 마늘까지 모든 채소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의 배 수준으로 올라 매출이 60%가량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가격은 오르고 장사는 안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이 시장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인근 정육점 주인인 이슬람 무함마드(31) 씨는 고깃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묻자 대뜸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인근 국가 수단의 입국 비자였다.
"아내와 두 아이를 키우기엔 물가가 너무 올랐고 경기도 좋지 않아요. 더는 카이로에 살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수단으로 가 장사를 해보려고요."
고물가 속 경기침체는 이집트 인력 시장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일용직 구직자로 붐비는 카이로 시내 알아랍 광장의 인력시장에는 30도를 웃도는 더위에도 남자 수십명이 나와 일감을 찾고 있었다.
인력시장에서 만난 샤흐벤 사이드(55) 씨는 "건설 현장에서 온종일 일하면 150이집트파운드(약 1만원)를 받는데, 벌써 나흘째 일감이 없어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방의 제재로 30%대의 연 물가상승률이 4년째 계속된 이란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테헤란 바낙 지역의 한 슈퍼마켓에서 만난 자흐라 씨는 "빵, 고기, 식용유 가격이 미쳤다"며 "물가가 너무 올라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그가 집어 든 우유 1L 한 통은 지난 3월 11만 리알(약 500원·시장환율 기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5배 이상 뛴 28만 리알(약 1천100원)이다.
서민이 주로 먹는 주제케밥용 닭고기도 ㎏당 65만 리알(약 2천800원)로 석 달 전 18만 리알의 3배 이상으로 올랐다. 한국 물가에 비해선 싸지만 현지 직장인의 월급이 대략 25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특히 최근 서방과 핵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서민이 바라보는 이란 경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테헤란 공예용품점에서 일하는 알리 씨는 "경제 문제로 이란인이 우울함에 빠졌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은 이란의 심각한 사회 문제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임금이 너무 적어 생계를 유지하기 정말 어렵다"고 밝혔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한 달에 6천만 리알(약 25만원)을 받고 일한다.
바낙 광장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하미드 씨는 "물가는 분 단위로 상승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일해도 생활비와 차 유지비를 감당 못 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에너지가 풍부하지만, 제조업 원료나 부품을 수입에 상당히 의존하기 때문에 자국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란 리알화 시장 환율을 고시하는 사이트인 본바스트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환율은 1달러당 33만2천 리알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5년 핵합의 당시 리알화 가치가 달러당 3만2천 리알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환율이 10배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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