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의사 가운 벗고 창업' 노형태 메디밸류 대표
AI 활용 의료재료 유통 혁신…병원 운영 AI 솔루션·신소재 개발 주력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일반적으로 개업의는 일인다역을 소화해야 한다. 전문 영역인 환자 진료와 비전문 영역으로 볼 수 있는 병원 경영(관리)이 두 개의 축이다. 경영에는 간호사 등 진료 보조 인력을 감독하고 의료 기자재를 공급받는 일이 포함된다. 이 때문에 개업의는 더 잘게 나누어 보면 최소 1인 3역의 처지다.
치과 의사로 활약했던 노형태(43) 메디밸류 대표는 일선 의료현장 체험을 살려 의료 테크 기업을 세웠다.
노 대표가 뜻을 같이하는 서울과학고 출신 동문을 모아 지난해 창업한 메디밸류는 의료 환경을 기초부터 혁신(리노베이션)하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 의료재료 '유통 혁신' 기치 내건 메디밸류
노 대표가 의사 가운을 내려놓고 창업 전선으로 나선 데는 의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해결해 궁극적으로 환자의 편익을 증진해 보겠다는 생각이 주된 동기가 됐다고 한다.
이 비전에 맞춰 메디밸류는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병원 운영 및 의료재료 구매 지원, 바이오·의료소재 연구·개발(R&D) 등 세 영역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이미 두드러지게 성과를 내는 분야가 작년 9월 론칭한 의료재료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메디밸류'다.
국내 최초로 가격 비교 기능을 갖춘 '의료 커머스'(Medical Commerce)를 표방하는 이 플랫폼은 병·의원이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산과 수입품을 아울러 3만여 가지의 의료 재료를 손쉽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일생 생활에서 보편화한 전자상거래 기반의 장보기(쇼핑)가 의료재료만 취급하는 분야에 적용된 모델로 볼 수 있다.
론칭 9개월 만에 전국 병·의원 1만8천여 곳 중 15%인 2천700여 곳이 메디밸류 이커머스 회원으로 가입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메디밸류는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위벤처스로부터 20억원의 시드투자를 유치하고 올해 한국벤처투자에서 20억원의 후속 투자를 끌어왔다.
◇ "디지털 기술로 병원 내부 문제 해결"
"우리 의료환경은 폐쇄적입니다. 높은 진입장벽에 낡고 구시대적인 부분들 때문에 의사랑 간호사 등 의료 보조 인력, 환자가 많은 불편을 겪고 있어요. 이 문제를 병원 내부에서부터 디지털 기술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노 대표는 치과병원을 10년 이상 운영해온 의사다.
서울과학고 출신으로 포항공대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다가 입대했다. IT 기업에서 병역특례 요원으로 복무한 뒤 진로를 바꾸어 부산대 치대와 가톨릭대 치의학 대학원을 나왔다.
치과병원 운영 경험은 그에게 개업의가 겪는 온갖 고충을 직접 들여다볼 소중한 기회가 됐다. 그중 하나가 의료재료 유통 과정에 고질적으로 내재한 문제였다.
노 대표가 개원의로서 갖게 된 문제의식은 병·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것이었다.
개원의에게 진료는 전문 영역이고 환자를 치료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진료뿐만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인 경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개원의의 숙명이다.
"개원의는 본인이 오너(경영책임자)로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의사들은 아침에 시작해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진료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런 환경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노 대표는 의료 현장에서 뛰면서 개원의가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의료의 질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환자들이 얻는 혜택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본 노 대표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집중한 분야는 디지털 기반의 AI 등 최첨단 기술(테크)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 의료재료 시장의 '아마존' 꿈꾼다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의료재료 직거래 사이트 '메디밸류'는 의료재료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지향한다.
복잡한 유통 체계로 이뤄진 의료재료 공급자와 수요자인 병·의원 간의 거래를 단순화한 온라인 직거래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노 대표는 이 플랫폼이 의료재료 가격을 낮추어 결과적으로 진료비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금값보다 비싸다는 일부 치과 재료의 경우 일선 병·의원이 구매 단가를 최고 69%까지 절감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의료재료 유통이 사실 불투명하고 복잡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요. 같은 재료라도 공급받는 루트에 따라 가격이 다 다릅니다. 도소매 단계에서 오프라인 베이스로 거래가 이뤄지는 등 유통 과정도 불투명한 게 현실이고요. 이런 구조는 병원 재료 수급에 문제가 되고 나비효과로 환자에게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노 대표는 메디밸류의 직거래 시스템이 의료재료 유통 영역에서 불투명했던 부분을 디지털 기술로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개원의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의료재료를 공급받는 환경을 만들어 결국엔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유통 구조를 혁신했다는 것이다.
의료재료 유통 분야의 '아마존'을 꿈꾸는 메디밸류는 현재 치과 중심인 취급 품목을 점진적으로 일반 의료 영역으로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구매 패턴 등의 거래 데이터를 인공지능(AI) 엔진으로 분석해 각 병·의원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재료를 자동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 임직원 30여명 중 서울과학고 동문이 6명
일선 병·의원이 노동집약적인 의료산업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노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AI가 병원 운영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상용화하면 의료 현장의 가욋일이 크게 줄면서 의료 서비스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메디밸류는 의료재료 직거래 플랫폼과 함께 병원 운영 지원 AI 솔루션을 향후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이 솔루션은 환자가 내원해 진료와 치료를 받는 전 과정에서 간호사 등 의료보조 인력이 하는 모든 일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항상성(恒常性) 있는 진료 서비스 제공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일례로 스마트폰 메시지 등을 통해 각각의 환자에게 진료 및 치료 단계에 맞춰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능이 솔루션에 포함된다.
지금은 치과의사 일을 접고 메디밸류 경영에만 전력하는 노 대표는 이 솔루션을 자신의 치과병원에 3~4년간 시험적으로 적용해 보니 환자 만족도가 훨씬 올라가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반 의료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디밸류가 역량을 집중하는 또 다른 분야는 바이오·의료소재 연구개발(의료소재 국산화·신소재 연구)이다.
의료소재 부문의 하이테크 연구기업으로 선정된 메디밸류는 서울과학고·카이스트 출신인 김상일 서울시립대 신소재 공학 교수, 석준희 고려대 AI연구소 교수 등 신소재와 AI 분야의 전문가들이 창업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와 석 교수는 현재 메디밸류의 최고생산관리자(CMO)와 최고기술경영자(CTO)를 각각 맡고 있다.
메디밸류 임직원 30여 명 가운데 서울과학고 동문은 노 대표를 포함해 6명이나 된다.
노 대표는 치과의사라는 타이틀을 뒤로 하고 의료 테크 스타트업을 세우게 된 배경의 하나로 '그릇론'을 폈다.
"포항공대 재학 시절 지도교수님이 '사람 그릇은 정해져 있지 않다. 자기 가족 4명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그릇이 되고 1만 명을 생각하면 그만큼의 그릇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었는데, 언젠가 문득 치과병원을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에 저와 주변 동료들이 가진 기술력을 합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 이 코너를 통해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하는 스타트업 CEO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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