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점령지 '러시아화'…영토 분쟁 격화 우려
동부 이어 남부 장악지역 러 국적 취득 간소화·루블화 통용
주민투표로 병합 추진…우크라·서방, 국경선 변경 불인정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러시아가 전쟁으로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지역에서 '러시아화'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 주민의 러시아 국적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4개 주 주민은 러시아 거주 경험, 재정 보증, 러시아어 구사 능력 등의 자격 요건 없이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대통령령은 2019년에도 발효됐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선포한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주)의 주민을 대상으로 러시아 국적 취득을 간소화하는 대통령령을 내렸다.
이후 이 지역의 우크라이나 국적자 80만 명이 러시아 여권을 받았다.
이번 대통령령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25일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불법적인 러시아 여권 발급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3월 중순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주 전역과 자포리자주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러시아 루블화가 법정화폐로 통용되고 있다. 또한 이들 지역에서는 공용문서가 러시아식으로 바뀌는 등 각종 러시아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학생을 '러시아 국민'으로 키우기 위한 러시아식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러시아는 또 새로운 민군 합동정부를 설치했으며 주요 도시에서는 러시아가 임명한 시장으로 교체됐다.
헤르손주의 친러시아 정부는 올해 말까지 헤르손주를 러시아에 편입하도록 푸틴 대통령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무력 점령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병합한 것과 같은 방식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병합할 것으로 보이는 곳은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등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가 이미 이들 지역에서 친러시아 지방정부를 세우고 경제체제를 루블화 기반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지역 언론과 통신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러시아군이 남부 점령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고, 이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점령지를 지키기 위해 방어 태세로 전환하면 앞으로 양측이 영토 탈환을 위한 공방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들 지역을 탈환하려고 반격하면 러시아는 자국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으로 간주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열린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바꾸려 하는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크림반도를 포함,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의 점령지 병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영토 분쟁이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점령지에서 입지를 공고히 한 후 휴전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측 협상 단장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실 보좌관은 22일 벨라루스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화를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자국 영토의 일부라도 러시아에 넘기는 방식의 평화협상은 불가하다는 뜻을 확인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쟁은 반드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한 2월 24일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 곧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점령지의 러시아화로 인한 영토 문제가 향후 전쟁의 양상과 종전 방식을 결정하는 데 중대한 변수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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