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ye] 훔볼트상 수상한 김명식 英 임피리얼대 교수…양자물리 권위자
"양자컴퓨터, 인류 당면 과제 풀어낼 가능성"
"양자사업 투자는 세계 최고 기술 향한 도전"
[※ 편집자 주 : '런던 Eye'는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의 이름이면서, 영국을 우리의 눈으로 잘 본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영국 현지의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소개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최첨단 양자(퀀텀)물리 분야에서 한국인 학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훔볼트상을 수상했다.
양자물리 권위자인 김명식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 교수는 독일 훔볼트재단에서 수여하는 훔볼트상 중 칼 프리드리히 폰 지멘스상을 받았다. 상금은 6만5천유로(8천700만원)다.
훔볼트재단은 국제적으로 연구 성과를 인정받는 독일 외 국가의 인문·과학 등 다양한 분야 학자들을 선정해서 훔볼트상을 수여한다.
훔볼트재단은 김명식 교수가 지난해 영국 물리학계에서 유일한 칼 프리드리히 폰 지멘스상 수상자라고 밝혔다. 수상자들은 올해 7월 독일 대통령 주재 리셉션에 초대된다.
김 교수는 2009년부터 런던 임피리얼 칼리지 물리학과에서 양자정보와 양자컴퓨터 등을 연구하고 있다.
임피리얼 칼리지에서 빛 알갱이와 원자의 상호작용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른이 되기 전인 1990년 모교인 서강대 물리학과에 교수로 임용됐다가 2000년 영국 퀸즈대로 옮겼다.
이후 지도교수이자 전 영국 물리학회장인 피터 나이트 교수가 명예교수로 물러나면서 임피리얼 칼리지에 자리를 잡았다.
김 교수는 양자물리 연구로 영국 왕립학회에서 수여하는 울프슨상과 한국의 호암상 과학상을 받았으며, 양자 분야 주요 저자 20인에 선정되는가 하면 영국 정부의 양자기술 현황 백서 작성에도 참여했다.
한국 양자정보·양자컴퓨터 1세대로, 김 교수로부터 한국과 영국에서 배운 제자들이 우리나라 양자물리 연구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양자컴퓨터 등 양자기술 분야는 세계 주요국들이 산업 생태계를 뒤바꿀 미래 핵심기술로 보고 경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선 IBM과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양자컴퓨터 사업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으며 세계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고, 양자컴퓨터를 처음 개발한 영국이나 기타 유럽 국가들, 후발주자인 중국 등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양자기술을 '10대 필수전략기술'에 넣고 올해 양자통신, 센서, 컴퓨팅 등 핵심원천기술 개발 등에 투자를 늘렸다.
김명식 교수는 특히 양자컴퓨터에 관심이 뜨거운 이유에 관해 슈퍼 컴퓨터로도 수만년이 걸릴 문제들을 훨씬 짧은 시간에 풀고 인류가 당면한 과제에 해법도 찾아낼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19일(현지시간) "세계 경제가 계속 성장해 인류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도 자연을 덜 해치는 방법을 찾으려면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필요한데, 그 후보 중엔 양자컴퓨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막으려고 전기차로 바꿔도 폐배터리 처리 등의 문제가 있고, 채식을 해도 질소비료를 만들 때 탄소가 다량 배출된다"며 "양자컴퓨터로 물질의 근본적 성질을 파악하면 배터리는 왜 낡는지, 비료산업이 왜 공해를 일으키는지 등에 관한 답을 찾고 효과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양자컴퓨터가 그런 문제를 풀어낼 정도가 되려면 전자 하나, 빛 알갱이 하나까지 모두 정확하게 통제하고 실리콘 칩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개발에도 새로운 생각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는 "이 과정에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부산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엄청난 도전은 많은 연구자를 흥분하게 한다"고 말했다.
진짜 성능이 막강한 양자컴퓨터는 상업화 시기가 언제일지 기약하기 어렵고, 어쩌면 계속 꿈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김 교수는 "꿈을 크게 꾸는 만큼 더 새로운 기술과 더 많은 생산물이 나온다고 본다"며 "양자컴퓨터는 근본적으로 못 만들 이유가 없으며, 이루어진다면 부가가치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차세대 기술'의 대명사인 양자 사업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앞서가겠다는 도전"이라며 "미래 기술을 꿈꾸는 우수 인재들을 중요시하는 기업에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임피리얼 칼리지 공대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김명식 교수의 연구실에선 런던 전망이 훤히 보였다. 물리학과 소속이지만 미래 컴퓨터를 연구하기 때문에 전자공학과 옆에 배치됐다고 한다.
이 공간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데니스 가버가 홀로그램을 개발하고 스테레오 녹음이 탄생했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임피리얼 칼리지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14명이다.
흐트러짐 없이 정리된 방에는 20여년전 서강대를 떠날 때 학생들이 이름을 적어 준 학교 티셔츠가 아직 걸려 있고 책장엔 아버지인 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과 조부의 사진 액자가 있었다.
우리나라 양자컴퓨터 발전을 위해 어떤 투자가 필요하냐고 묻자 김 교수는 "양자컴퓨터뿐 아니라 과학 전반의 발전을 위해 호기심이 많고 개척 정신을 가진 우수 인재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성장하도록 돕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이라면 성적도 신경 써야겠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꿈을 꿔봐야 할 시기"라며 "젊었을 때 더 큰 문제에 뛰어들어볼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종종 든다"고 덧붙였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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