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국가 레바논, 4년만에 총선…최악 경제위기 후 처음
"종교 중심 정파주의 깨기 어려워…신인·야권 선전 여부 촉각"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는 중동 국가 레바논에서 4년 만에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이 시작됐다.
15일(이하 현지시간)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레바논 선관위는 이날 오전 7시부터 15개 광역 선거구에서 총선 투표를 개시했다.
390만여명의 유권자가 총 128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레바논 경제위기를 초래한 부패 하고 무능한 정치권에 대한 심판 무대로 평가된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치른 레바논은 이후 세력 균형을 위한 합의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독특한 권력분점 체제를 유지해왔다.
정치권도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필두로 시아파 '아말 운동', 수니파 '미래 운동' 및 '자유 애국 운동', '레바논 포스' 등 마론파 기독교도 정당, 이슬람 드루즈파의 '진보 사회주의자당' 등을 주축으로 세력이 형성되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이런 정치 시스템에 대변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종파 정치에 반기를 들고 출사표를 던진 야권 및 정치 신인들이 얼마나 많은 의석을 확보할지가 관심사다.
베이루트에서 투표를 마친 28세 여성 나일라는 "이제 새로운 얼굴들을 세울 때다. 나는 변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센추리 재단의 분석가인 샘 헬러는 AFP 통신에 "현 상태를 넘어서는 투표 결과를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지난 2018년 총선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우호 정당인 마론파 기독교 계열의 '자유 애국 운동'이 과반인 71석을 차지했다.
이후 레바논 정계에서는 시아파 무슬림 지도자의 영향력이 커졌고, 수니파의 기세가 완연하게 꺾였다.
대표적 수니파 정당인 '미래 운동'을 이끌어온 사드 하리리 전 총리는 지난 1월 정계 은퇴와 함께 총선 보이콧 선언을 했다.
이런 정치 지형 속에 레바논에는 2019년 본격적인 경제위기가 닥쳤다.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가 겹치면서 레바논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대폭발 참사의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한 뒤에는 1년 넘게 국정 공백이 이어지면서, 레바논 국민은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였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레바논의 경제 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진단했으며, 엘리트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경제 침체가 레바논의 장기적 안정과 사회적 평온을 위협한다고 진단했다.
선거 감시 단체들은 일부 의원들이 경제난에 허덕이는 유권자들에게 식량과 연료를 미끼로 매표를 한다고 지적했다.
투표 중 폭력 사태 발생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 선출되는 의회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위한 개혁 입법을 처리할 예정이고, 오는 10월 임기가 종료되는 미셸 아운 대통령의 후임도 선출할 예정이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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