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고객관계가 기업가치 결정"…최태원이 서울대 찾은 이유
경제학부 첫 특강 강사로 나서 '시장의 변화, 미래의 기업' 강연
"관계에 강한 테슬라가 인텔보다 주가 빠르게 상승"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의 우석경제관 107호.
정원이 176명인 이 대형 강의실은 경제학부의 첫 명사 초청 강연이 시작되는 오후 4시가 30분가량 남았는데도 좌석이 꽉 차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뒤늦게 강의실을 찾은 학생들은 맨 뒤 복도에 서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강연자는 '시장의 변화, 미래의 기업'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할 SK그룹 최태원 회장.
대기업 회장이 직접 대학을 찾아 학생들과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아 최 회장의 강연은 서울대 내에서 내내 화제가 됐다. 특히 이날은 SK그룹이 재계 대기업집군단 2위로 올라선 날이어서 학생들의 관심은 유독 뜨거웠다.
특강 시작 전 5분 전쯤 모습을 드러낸 최 회장은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학생들의 손뼉을 치며 반갑게 맞이하자 곧 미소를 띠며 강의를 시작했다.
먼저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으로 분위기를 띄운 최 회장은 미래의 기업환경과 관련해 학생들과 쉴 새 없이 질의응답을 하며 강의를 이어갔다.
가까이 가기 힘들 줄 알았던 '회장님'의 격의 없는 태도에 서울대 학생들은 끊이지 않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최 회장은 디지털화와 세계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영향으로 기업의 목적이 수익을 넘어 소셜 밸류(사회적 가치) 창출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수업이 경제학부 특강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 외부효과의 내부화 등 경제학적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최 회장은 "현재의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간 수많은 1대1 관계로 형성되고, 가격은 이러한 관계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현재의 수익 규모보다 고객과의 관계에 따라 미래의 현금 흐름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의 가치는 기업이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제시하고, 이를 추진할 의지와 역량에 대한 주주나 투자자가 신뢰를 할 때만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30년 전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t)의 1% 정도인 2억t(톤)의 탄소를 줄이는데 SK가 기여하겠다는 '파이낸셜 스토리'가 예로 제시됐다.
파이낸셜 스토리란 조직 매출과 영업이익 등 기존의 재무성과에 더해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이 담긴 성장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이해 관계자들의 신뢰와 공감을 이끄는 전략을 뜻한다.
아울러 최 회장은 미국의 인텔과 테슬라를 비교하며 두 기업의 주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설명했다.
그는 "인텔과 테슬라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각각 168만명, 937만명으로 5배 차이가 난다"면서 "고객들과 많은 관계를 맺은 테슬라에 비해 인텔은 고객과의 접촉이 부족하다. 결국은 관계가 기업의 가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최 회장은 "미래에는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노동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창조성의 원천으로서의 자유와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 변화를 수용해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의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학생들의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고, 최 회장도 거리낌 없는 대답을 내놨다. 또 100명이 넘는 학생들과도 흔쾌히 '셀카'도 찍었다.
SK그룹의 '워라밸' 수준을 묻는 말에 최 회장은 "워라밸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것은 인재가 집중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드는 것"이라며 SK 그룹사들이 채택한 공유 오피스나 자율 좌석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특히 한 학생이 2011년 SK하이닉스[000660]의 인수를 '신의 한수'라고 언급하자 최 회장은 "반대하는 사람도 꽤 있었고 또 적자를 어떻게 감당하고, 리스크를 어떻게 피할지가 고민이었다"며 "저만의 결정은 아니었지만 오늘도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답했다.
한편 최 회장은 이날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서 재계 순위 2위 그룹으로 오른 것에 대해선 "기업집단순위는 자산순위인데 (올라간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덩치가 커졌다', '둔해졌다' 이런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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