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존재감 미미' 비판받던 유엔 사무총장 "4일간 휴전 촉구"
정교회 부활절 맞아 21∼24일까지 휴전 제안
전 유엔관료들 "중재 노력 안 하면 유엔 존립 위태"…적극 대응 주문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정교회 부활절을 앞둔 성주간을 맞아 4일간 휴전을 요구했다.
19일(현지시간) AP,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교회의 성목요일인 21일부터 부활절인 24일까지 4일간 '인도주의적 휴전'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그는 "부활절은 회복과 희망의 날이지만 올해는 전쟁의 그늘에서 성주간이 지켜지고 있다"며 "수십만 명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민간인에 대한 맹공과 끔찍한 희생은 앞으로 다가올 비극과 비교하면 미미한 것일 수 있다"며 "총기를 침묵시키고 당장 위험에 처한 많은 이들을 위해 안전한 길을 구축하자"고 말했다.
쿠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번 휴전으로 동부 전장에 있는 민간인이 안전하게 탈출하고, 전쟁 피해자들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1천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피란길에 올랐다. 또 러시아의 맹공을 받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약 400만명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약 1천2백만명이 음식과 물, 약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휴전 제안은 유엔이 이번 사태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00명 이상의 전직 유엔 고위 관료들의 모임은 최근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유엔이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유엔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우리와 대중이 보고 싶은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유엔의 정치적 존재감과 참여, 주목할만한 인도주의적 대응"이라며 "우리는 평화를 위한 유엔의 명확한 전략을 원한다. 유엔의 능력을 임시휴전과 중재, 분쟁 해결에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분쟁 지역 방문, 협상 신속 대응 차원에서 집무실 유럽 이전 등의 방안을 거론하며 이를 통해 유엔의 위기돌파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서한에는 제프리 펠트만 전 유엔 정무 담당 사무차장, 앤드루 길모어 전 유엔 인권담당 부사무총장, 프란츠 바우만 전 유엔 사무차장 등이 참여했다.
유엔은 과거 전세계 주요 갈등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좀처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터키, 오스트리아 등 각국 정상들이 중재에 나서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유엔 측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푸틴 대통령과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혔지만, 곧바로 러시아 측이 부인하면서 겸연쩍은 상황이 연출됐다.
전날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푸틴 대통령과 접촉을 시도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고 답한 바 있다.
같은 날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간단히 말해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러시아 대통령과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를 통해서도 러시아 외교부와도 접촉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 이사국 간의 분열과 회원국 간의 이견으로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은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우탄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과 소련 사이 갈등을 중재한 바 있다. 1990년 걸프전 때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사무총장이 미국에 이라크와 협상하도록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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