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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물가상승…일본은행, 금융완화 부작용에도 출구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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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물가상승…일본은행, 금융완화 부작용에도 출구 난항
구로다 총재 취임 후 9년간 '돈 풀기'…시장 왜곡·재정건전성 저해
잔여 임기 1년 구로다 "출구 논의 시기상조"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금융완화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마땅한 출구를 찾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9년간 이어진 금융완화 정책이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8일까지다.
그가 취임한 2013년 3월 무렵에는 엔화 강세가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꼽히는 상황이었고 대규모 금융완화는 일본 경제의 돌파구로 여겨졌으나 더 이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구로다 총재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말 환율은 1달러에 94엔대였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에 나서면서 엔화 가치는 2013년 말 달러당 105엔대로 하락했고 2014년 말에는 120엔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와 더불어 일본 주가는 상승했다.

구로다 취임 당시 12,000을 살짝 웃돌던 도쿄주식시장의 닛케이평균주가(225종·닛케이지수)는 2015년 4월 15년 만에 20,000을 돌파했고 작년에는 30,000을 넘기도 했다.
'구로다 바주카포'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대규모 금융 완화는 한동안 경제계의 환영을 받았다.
구로다 총재는 물가 상승률 2% 달성을 중요한 과제이자 정책 목표 달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지표로 삼았다.
금융완화와 엔화 약세를 통해 투자 증가와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을 꾀하고 임금인상과 더불어 소비가 확대하는 선순환을 물가 상승의 배경으로서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완화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구로다 총재는 2% 달성에 필요한 기간을 2년 정도로 제시했으나 9년이 지나도록 달성하지 못했다.
2016년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도 특효를 내지 못했다.
일본 정부의 최신 통계를 기준으로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은 올해 2월 0.6%였다.
최근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악재가 겹친 가운데 일본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작년 11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이 금년도에 42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니혼게이자이신문)도 나왔다.
지난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22엔 중반에서 125엔대 중반을 기록하는 등 최근에 엔화 가치 하락이 두드러지고 있다.
엔이 예전만큼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신호이며 일본 경제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그만큼 엄혹하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엔화 약세가 일본 기업의 수출을 가속하는 재료로 꼽혔지만, 주력 기업의 생산 기반이 외국으로 다수 이전한 상황이라서 긍정적 효과는 예전만 못해 '나쁜 엔저'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유와 각종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엔화 가치 하락으로 4월 이후에는 물가 상승률이 2%를 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변동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본 정부가 이동통신사를 압박해 유도한 저가 요금제의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은행은 이동통신사들이 작년 봄 휴대전화 저가 요금제를 도입해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소비자물가를 1.1% 포인트 끌어내리는 직접 효과가 있었다고 추산한 바 있다.
물가 상승률은 1년 전 같은 시점과 비교하기 때문에 저가 요금제는 도입 1년을 넘기면 기저 효과로 인해 통계상 물가 상승 억제력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로다 총재도 최근 물가 상승 조짐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표명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률이 2%에 달할 가능성에 대해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용 증가를 통해 물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되는 한편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나 기업 수익 악화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가 "금융 완화에 의한 수요 증가를 배경으로 기업 수익이나 고용·임금 상승 속에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기조"라고 일본은행의 지향점을 설명한 것에 비춰보면 현재는 가계와 기업의 부담만 키우는 '나쁜 물가 상승'이 펼쳐지는 셈이다.
아사히신문은 장기간 이어진 대규모 금융완화와 관련해 "저금리가 계속돼 금융기관이 대출해도 차익을 얻지 못하고 수익 압박을 받는 등 부작용에 괴로워한다"며 어떻게 출구를 모색할지가 관건이라고 10일 진단했다.

장기간 이어진 돈 풀기에 시장이 왜곡된 상황도 출구 모색이 쉽지 않은 이유다.
상장지수펀드(ETF)를 대량으로 매입하면서 일본은행 보유 ETF 잔고는 2012년 말에 1조4천억엔에서 지난달 말 36조엔(약 356조원)으로 약 26배나 팽창했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량매입한 결과 전체 국채 중 일본은행이 보유분은 2012년 말 11%였는데 작년 말 43%로 늘었다.
아사히는 금리가 1% 상승할 때 내야 할 국채 원리금이 현재 예상한 것보다 2025년도에 3조7천억엔(약 36조6천억원) 늘어난다는 재무성의 추산을 소개하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구로다 총재는 1월 열린 회견에서 대규모 금융완화의 출구 전략에 관한 질문을 받고서 "아직 출구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논의가 가능한 상황은 아니다"고 반응했다.
일본은행 이사를 지낸 마에다 에이지 지바긴총합연구소 사장은 구로다 총재의 남은 임기 중 금융 정책 방향에 관해 "미국과 달리 코로나19 속에 경제 회복이 둔하다. 금융정책이 명확하게 수정될 가능성은 낮은 게 아니겠냐"고 NHK에 의견을 밝혔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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