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 철수지 북부 학살하고 점령지 남부 강제이주
英 가디언, 러시아 이주 여성 3명 인터뷰…2명 "강제로 떠났다"
우크라·서방 인권단체도 문제점 지적…크렘린궁 "거짓말" 일축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 의혹을 받는 가운데 도시를 장악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에 살다 러시아로 이주한 여성 3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들 중 2명은 러시아군에 의해 강제로 마을을 떠났다고 주장했고, 다른 1명은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침공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공격해 대부분을 장악한 도시다. 이에 이곳 주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해 생활해 왔다.
친척들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청한 여성 한 명은 "지난달 15일 러시아군이 방공호로 쳐들어와 모든 여성과 어린이를 밖으로 내보냈다"며 "우리를 점령한 나라로 이주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방공호에서 나온 뒤 "다른 200∼300명과 함께 버스에 태워져" 러시아가 통제하는 아조프해 연안의 노보아조프스크로 이동했다며 "버스에서 몇 시간을 대기하고 나서 거대한 텐트촌에 입소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여과 캠프'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미국 맥사 테크놀로지스가 지난주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이 텐트촌은 일찌감치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간 베지멘네에 있다.
이 여성은 캠프에서 사진과 지문을 찍고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소속이라고 밝힌 남성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내 휴대전화를 뒤졌고, 내가 우크라이나군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군에 친구가 있는지를 물었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여과 캠프'를 통과한 이들은 우크라이나 동쪽 국경에서 80마일(130㎞) 떨어진 로스토프로 옮겨졌고, 이곳에서 최종 목적지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동쪽 100마일(160㎞)에 있는 블라디미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 여성은 밝혔다.
그러나 여성은 로스토프에 가족들이 있다고 말한 뒤 다른 이들과 떨어졌고 이후 걸어서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도착했다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두 번째 여성은 지난달 16일 러시아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마리우폴을 떠났다며 "가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여과 캠프'나 떠나온 여정 모두 끔찍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로스토프에 머물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떠날 계획을 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러나 이들 두 여성과 달리 세 번째 여성은 만족감을 보였다.
역시 마리우폴을 떠나 가족들과 함께 로스토프에 머무는 블라디미라 씨는 "나는 러시아로 가기를 원했고 안전한 곳으로 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여과 캠프'를 통과했지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며 "위험에서 탈출한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도 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수천 명의 마리우폴 주민들을 '통과 캠프'에 수용했다가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주장해 왔다.
서방 인권단체들도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의 다른 안전한 곳으로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강제 이주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휴먼 라이츠 워치' 유럽·중앙아시아 지부의 타티야나 록시나 부소장은 "많은 이들은 러시아로 가거나 우크라이나에 있다 죽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동기가 무엇이든 개인 또는 집단의 강제 이주나 점령지로부터 보호 대상 인력을 소개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강제 이주 주장에 대해 크렘린궁은 "거짓말"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주민 42만 명이 자발적으로 이주했다며 이들은 모두 "우크라이나 위험 지역과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출신"이라고 밝혔다.
신원 조회에 대해 러시아 정부 소유 매체 '로시스카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숨어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이주를 돕는 '헬핑 투 리브 펀드'는 "지난달 28일부터 도움 요청 건수가 늘고 있고 '여과 캠프' 대기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마리아 이바노바 대변인은 그러나 "러시아에서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에 반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도 수백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이것이 매우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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