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러시아 결집' 벽 만난 중국의 미국-유럽 '갈라치기' 시도
시진핑 "EU의 자주적 對中정책" 기대에 유럽은 중러협력 견제로 응수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결집한 미국과 유럽에 대한 '갈라치기'를 시도했지만, 서방의 강고한 반(反) 러시아 연대라는 벽을 확인한 모습이다.
1일 영상으로 진행된 중국-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재확인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약 5주가 지나간 가운데 중국은 표면상 '중립 노선'을 표방했지만, 국제법을 무시해가며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를 비판하지 않고 대러 제재에 반대하는 중국의 행보는 러시아에 대한 사실상의 지지로 국제사회는 받아들였다.
그것이 중국에 상당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던 터에 미국과 유럽은 대 러시아 제재에 중국이 우회로를 제공할 가능성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영상 통화를 한 데 이어 1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영상으로 대화했다.
중국-EU 정상회의 채널은 통상 한중일 3국 정상회의와 더불어 '2인자'인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참석하는 협의 틀인데, 이번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전면에 나섰다.
리 총리가 참가한 정상회의 세션도 진행됐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은 시 주석의 발언에 더 많이 반영됐고, 관영 매체들의 보도도 시 주석 발언에 집중됐다. 중국이 이번 회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공을 들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시 주석 발언에서 중국의 속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부분은 유럽의 자주성을 강조한 대목이었다. 시 주석은 "유럽 측이 자주적인 대 중국 인식으로 자주적인 대 중국 정책을 펴서 중국과 함께 공동으로 중국-유럽 관계의 장기적 안정화를 추진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결속이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화하고 있는데 대한 중국의 경계심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건곤일척'의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의 갈등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유럽과는 최대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것이 중국의 본심이라는 게 중평이다.
러시아와 전략 협력을 강화하고,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의 제3세계 국가 그룹에서 '물량 공세'를 앞세워 지지 세력을 확대해온 상황에서 유럽을 '중립코너'에 묶어 두는 것은 미중 전략경쟁 시대 중국 외교의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 의혹 등으로 인해 중국-유럽 관계가 삐걱대면서 중국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CAI)의 유럽의회 비준이 보류된 터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러관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경계심이 커진 것은 중국 외교에 큰 악재였다.
결국 중국으로선 자국에 대한 유럽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미국과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는 유럽의 행보를 조금이라도 중립 쪽으로 옮겨 놓는 것이 이번 정상회의에 임하는 목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상회의 후 나온 EU 측 발표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 EU의 대응은 중국의 기대와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AFP통신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이 우리의 (대 러시아) 제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 측에 러시아의 전쟁 수행이나 서방 제재 회피를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밝히고 "이는 유럽에서 중국에 대한 평판 손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넘어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길 바라는 메시지를 냈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럽 측의 당면 최대 관심사는 역시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함으로써 전쟁의 균형이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 전반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유럽의 시선은 중국과의 '협력'보다 중러 협력에 대한 '견제' 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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