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오르테가 정권에 균열 조짐?…소신 발언·사퇴 잇따라
정권 변호해온 미국인 고문 변호사 '도덕적 양심' 내세워 사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중미 니카라과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정권 관련 인사들의 이례적인 소신 발언과 사퇴가 잇따랐다.
니카라과 일간 라프렌사는 27일(현지시간) 오르테가 정권의 국제 법률고문 역할을 해온 미국 변호사 폴 라이힐러가 "도덕적 양심"을 이유로 사의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라이힐러 변호사는 이달 초 오르테가 대통령을 향해 쓴 서한에서 "내 도덕적 양심이 당신과의 연을 끊고 당신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멈추라고 요구한다"며 "당신은 더이상 내가 오랫동안 존경하던 그 다니엘 오르테가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는 오르테가의 과거 혁명 동지였다가 이후 정치범으로 몰려 지난달 옥사한 우고 토레스를 언급하며 "오르테가가 그를 살해했다"고 표현하는 등 니카라과 정부의 반대파 체포와 독립언론 탄압 등을 비판했다.
라이힐러 변호사는 1980년대 니카라과와 미국 정부의 국제사법재판소 소송에서 니카라과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이후 오르테가 정권과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며 국제 법정에서 니카라과를 변호했다.
오르테가 대통령,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과 개인적으로도 가까이 지내 라이힐러 변호사 부부가 니카라과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한 후 로사리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고 라프렌사는 전했다.
라이힐러 변호사의 이번 사퇴는 앞서 미주기구(OAS) 주재 니카라과 대사가 자국 정부를 "독재 정권"이라고 지칭하며 사의를 밝힌 지 얼마 안 돼 알려졌다.
아르투로 맥필즈 대사는 지난 23일 화상으로 열린 미주기구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내 나라 독재 정권을 고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계속 침묵하면서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옹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발언했다.
맥필즈는 이후 AP통신 인터뷰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제 내 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맥필즈의 이례적인 소신 발언이 오르테가 리더십의 균열을 드러낸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야권 성향 니카라과 변호사인 엔리케 사엔스는 트위터에 "맥필즈의 사임은 독재정권 내부의 불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며 "내부에 균열이 생기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니카라과 야당들도 정권 인사들을 향해 용기를 내 맥필즈 대사의 선례를 따르라고 촉구했다.
다만 미국 워싱턴에 주재하던 맥필즈 대사나 미국인인 라이힐러 변호사와 달리 니카라과 내부에선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부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오르테가 정권이 거센 보복이나 마녀사냥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1979년 좌파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을 이끌고 친미 독재 정권인 소모사 정권을 축출한 후 1990년까지, 이어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장기 집권 중이다.
2007년 재집권 이후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고 특히 지난 2018년 반(反)정부 시위, 지난해 대선을 전후로 무차별적인 야권 탄압을 이어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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